의료계 “증원 백지화”…정부 “증원 기반 의료개혁”
의대 교수들 집단사직 이어져 … 의·정 간 시각차 크지만 극적 타협 가능성도
‘대화 가능성’이 나오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의정갈등 해법’ 사이에 간극이 커 양측이 실제 논의 테이블에 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은 계속되고 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전날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하기로 결의했다. 실제로 이미 400명 넘은 교수들이 함께 사직서를 제출한 대학도 있다.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이들 외에 나머지 대학 의대 교수들도 조만간 사직서 제출에 동참할 예정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사직서 제출에 전국 40개 의대 중 “거의 대부분이 동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화 제안에 냉담한 의료계 = 이런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요청을 받아들인 윤석열 대통령이 잇달아 유화적 발언을 하면서 대화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대다수 의료계 인사들은 냉담한 반응이다.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대 교수들은 ‘의대 증원’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면서 25일 집단 사직을 강행했다.
전의교협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배정의 철회가 없는 한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면서 “정부의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들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의대 교육의 파탄을 넘어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게 자명하다”며 “의대 입학정원 문제는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전의교협과 함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증원 백지화는 아니다’ = 반면 정부는 의대 증원이 ‘27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전의교협이 정부와의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다”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2018년과 2020년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증원을 추진했으나, 전공의들의 무기한 업무중단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다.
이날 조 장관은 “끝까지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의사들의 ‘의대 증원 철회’ 주장이 국민의 뜻에 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증원된 국·사립대학을 대상으로 26일부터 정부 지원 수요 조사에 착수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대생 정원 2000명 증원은 변동 없고, 지금 (2000명 증원을 위한) 여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화 때는 양측 모두 ‘치명타’ = 다만 ‘극적 타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정부와 의사들 모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사태의 장기화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정책 발표 초기 상승했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국민의 피로감이 쌓이면서 하락하고 있다. 의사들은 ‘집단 이기주의’로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이 5월 하순 공고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최종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라 두 달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도 극적 타협의 가능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극적 타협에는 의정 갈등의 핵심인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안을 만들더라도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이 봉합되기 어렵다. 이번 의정 갈등 과정에서 전공의들은 의협은 물론 교수들과도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
◆불안한 환자들 = 의대 교수들의 사직 행렬에 환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소속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5일 성명서를 내고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더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전공의가 사라진 병원에서 그나마 교수와 전임의,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버텨주어 환자들도 이만큼이나마 버텼다”면서 “이제 교수들마저 떠난다면 환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대 전체 교수들의 단체인 교수협의회(교협)는 26일 긴급 제안문을 내고 정부에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교협은 “급격한 증원 결정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의학의 퇴보를 초래할 수도 있고, 정부의 이공계 육성과 무전공 입학 정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며 이같이 촉구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