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이육사·박완서와 문학으로 소통
성북구 성북동에 근현대문학관 개관
지역 연고 문인과 작품 만나는 거점
“삶의 고뇌와 창작의 고통으로 빚은 그들의 문학과 예술이 / 추억과 낭만이란 이름으로 어색하지 않게 다가와 / 어떤 그리움으로 뭉클한 가슴에 스미는 것 같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노년기를 보냈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 ‘심우장’. 유년시절 심우장에서 살았던 외손자 정재홍씨가 할아버지를 비롯해 일대에서 문학작품을 일궈낸 작가들을 추억했다. 그는 “영혼이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는 시간여행을 하며 성북동을 사랑했던 빛나는 얼굴들을 만나는 행복이 있기”를 소망했다. 정씨의 어머니이자 한용운 선생의 딸인 한영숙 여사, 이육사 시인의 딸 이옥비 여사, 김내서 작가의 아들 김세헌 선생, 정한숙 작가의 아들 정지태 선생, 김소진 작가의 아들 김태형씨가 기원하는 마음을 보탰다. 지난 19일 한양도성 자락에 ‘성북근현대문학관’이 문을 열던 날 풍경이다.
29일 성북구에 따르면 근현대문학관은 주민들을 비롯해 성북동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성북동을 빛낸 아름다운 사람들’과 문학으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성북에서 집필활동을 했던 문인과 문학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성북동을 비롯해 성북구 일대는 한용운 이육사 이태준 조지훈 박완서 등 한국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걸출한 문인들이 생활하던 근거지이자 작품 속 무대였다. 문인들은 물론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 예술인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장이기도 했다. 성북구는 지역에 거주했던 문인과 지역을 담아낸 문학작품, 관련 자료를 수집해 주민과 관람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도록 돕기로 했다.
성북로21길 한양도성과 연접해 자리잡은 성북근현대문학관은 대지 570㎡에 연면적 447.63㎡에 달하는 3층 건물이다. 2층은 상설전시실, 1층은 기획전시실, 지하 1층은 자료열람실이다. 기획전시와 문학자료 보관, 문학 연구와 체험 등을 통해 문인들의 삶과 지역 문학을 알리는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성북을 형상화한 다양한 문학작품과 주요 문인을 만날 수 있다. 문예지 등을 통해 소통했던 모습도 볼 수 있다. 성북 문학 듣기, 문학지도, 필사체험 등 관람객들을 위한 즐길거리도 준비돼 있다. 각 유족이 이야기하는 작가와 작품, 성북구 등은 영상에 담아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옥비 여사는 “성북은 큰집같다”며 “성북 문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고 그 흔적을 기록한 근현대문학관을 통해 많은 역사가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감회를 전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을 기념한 특별전시가 진행 중이다. ‘님의 침묵’ 서문에서 제목을 딴 ‘긔룬 것은 다 님이다’이다. 성북 대표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을 담은 전시다. 입적 80주기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의미에서 준비했다. 특히 1926년 희동서관에서 펴낸 ‘님의 침묵’ 초판본이 관심을 끈다. 유족과 함께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시민들이 낭송하는 만해의 시를 감상할 수도 있다.
성북구는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를 축적하고 문인들 삶과 작품 속 흔적을 찾아낸다는 방침이다. 궁극적으로 근현대문학관을 기반으로 해서 '문학과 문인의 도시'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구는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활동해온 거점”이라며 “문화예술의 도시 성북의 다채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