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중앙은행은 왜 번번이 인플레이션 예측에 실패할까

2024-03-29 13:00:27 게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본격화된 전세계적 고물가 추세는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생산 및 고용 등 공급측면으로부터의 원활한 경기회복을 방해하는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1970년대 석유파동 시기 이후 전례 없던 고물가시대가 나타난 것은 팬데믹 경기침체 대응과정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 외에도 국제적 에너지 수급 차질,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가격 상승, 경제심리 회복에 따른 수요회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물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유럽의 물가상승률은 다시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 수준대로 떨어지며 안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한국도 2022년 중반 전년동월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6.3%를 정점으로 물가상승 속도가 완만해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추세가 나타났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훼손으로 인한 유가, 농산물 및 원자재의 수급 불안정, 기대인플레이션 증가 등 여전히 물가상승압력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주택 보건 보험 등 주요 서비스 가격의 상승과 미루어왔던 임금인상이 가시화되면서 물가상승압력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기존의 예상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어 인플레이션 기조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이해하는 척도 필립스 곡선

1958년 경제학자 필립스가 영국 자료를 이용해 명목임금 상승률은 실업률과 안정적인 역(-)의 관계에 있다는 경험법칙을 제시했다. 이후 필립스 곡선은 생산과 고용 등 경기를 나타내는 다양한 지표를 사용해 실물부문과 인플레이션의 관계를 분석하는 도구로 확장됐고,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운용하는 데 이를 적극 활용해왔다.

고용이 늘면 생산이 증대되지만 노동수요의 증가로 인한 임금상승은 결국 생산비용과 상품가격을 높인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필립스 곡선의 의미는 정책결정자 입장에서 보면 낮은 실업률과 안정적인 물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정책적 딜레마를 제시하기도 한다.

학계와 중앙은행은 특히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에 주목해왔다. 생산 및 고용 변화에 따라 물가변동이 크게 나타난다면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르고, 반대로 완만한 필립스 곡선은 경기변화에 따라 물가변동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고 참고해 통화정책의 우선순위와 정책수단을 결정해왔다.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물가와 생산 또는 고용 간의 관계는 분석대상 시기, 물가와 실물경기를 대변하는 지표, 통계적 방법론 등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를 초래해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를 시작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완만한 필립스 곡선(Flattening Phillips Curve)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생산기술과 노동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고용과 생산의 동조성이 약해지는 고용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 현상이 진행되고 실물경기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물가변동은 상대적으로 작아 필립스 곡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누가 필립스 곡선을 죽였나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은 1961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관계를 주요 시기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대안정기 이전(1961~1983)의 경우 인플레이션과 경기적 실업은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과 같이 서로 역(-)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후 대안정기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그 관계가 약화되고 2000년대 이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물가변동과 실업의 관계가 거의 사라지는 것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물가와 실물경기 간 관계가 약해진 원인이 다양하게 제기되어 왔다. 대안정기를 이끌었던 신흥개발국의 등장과 급격한 국제무역의 증가는 기업간 가격경쟁을 심화시켜 물가상승압력을 제약했고, 소위 아마존 효과로 알려진 전자상거래의 확산에 따른 유통비용의 절감은 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전세계 거의 모든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운영체제로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고 성공적인 제도의 운영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착되고 이로 인해 물가변동이 축소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필립스 곡선의 평탄화 또는 실종은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안정과 실물경기안정을 동시에 담당하는 중앙은행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물가와 실물경기 간의 구조적 관계가 약해지면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중앙은행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된다. 실제 인플레이션이 물가상승률 목표치나 예상치와 지속적으로 괴리됨에 따라 중앙은행의 신뢰성이 약화되어 적정한 기대인플레이션의 형성을 어렵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실제 인플레이션과 경제활동이 불안정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지난 20여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 제임스 불라드는 “누가 필립스 곡선을 죽였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중앙은행과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통화정책을 이끌기 위해 경제구조나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랫동안 전통적인 방식의 필립스 곡선에 의존해왔다고 비판했다.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 예측에 실패해온 중앙은행이 과연 인플레이션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하며, 만약 주 원인이 인플레이션과 노동시장과의 관계가 붕괴된 것을 무시한 채 인플레이션을 이해하려는 중앙은행의 분석틀이 불완전했기 때문인지를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경제 불확실성 없앨 새로운 툴 고민해야

지난 몇년간 물가가 급격히 상승하며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례 없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필립스 곡선이 부활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내외 경제환경이나 생산과 고용의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섣부른 판단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현 상황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과 보다 유사하며, 중앙은행이 물가와 경기를 안정시키는 두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온 것을 필립스 곡선이라는 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그간 간과되었던 재정정책 운용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재정지출을 위한 정부부채의 상환 방식이나 한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채 정부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제공된 재정지원이 미래의 세금이라는 인식이 약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견해다.

이제 학계, 중앙은행, 그리고 정부는 함께 지혜를 모아 기존 틀에서 벗어나 경제구조와 환경의 변화를 적절히 반영해 향후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 경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김영세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