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2차원 양자물질의 세계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차원이 줄어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수학적으로 2차원은 두께가 없는 면이고, 물질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0차원은 크기가 없는 점이다. 양자점 같은 것이 물질세계에서 0차원에 근접하는 경우다.
물리학적으로 2차원에 가장 근접한 것은 원자 한층이다. 이보다 얇은 물질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 한층으로 이루어진 ‘2차원 물질’의 성질이 3차원 물질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 연구가 많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원자 한층을 실제로 분리할 수 있는지도 잘 몰랐다.
원자 한층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차원이 줄어든 효과가 전기 전도에 영향을 줄 때까지 얇게 만들어보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전자가 거의 2차원 평면에 가까운 얇은 층에만 존재하는 2차원 전자기체(2DEG)를 반도체 물질 내부에서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강한 자기장을 걸 때 양자홀 효과 등이 발견되어 노벨상 수상자가 다수 배출되었다. 십수년 전 카이스트 총장을 역임한 러플린 박사도 양자홀 효과의 이론을 정립한 사람이다.
그래핀 등 2차원 물질 연구 봇물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물리학과의 안드레 가임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박사후 연구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물질 덩어리에서 실제로 원자 한층만 분리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층상구조’ 물질인데, 한층 안에 있는 원자 사이 결합은 강하지만 층과 층 사이의 결합은 약해서 쉽게 떨어져 나가는 성질을 가진다. 연필심의 성분인 흑연이 이런 물질이라 종이에 글씨를 쓰면 흑연 층이 쉽게 떨어져 나가 종이에 묻는다. 하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두꺼운 흑연을 어떻게 원자 한층으로 아주 얇게 분리할 수 있을까? 이 때 노보셀로프 박사가 사용한 것이 스카치테이프다.
납작한 흑연 덩어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면 흑연이 묻어나온다. 묻어나온 흑연 조각에 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면 조금 더 얇은 흑연 조각이 묻어 나온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점점 더 얇은 흑연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언제 흑연 원자 한층을 만들 수 있을까?
두께 1cm 짜리 흑연 덩어리에서 스카치테이프로 한번 떼어낼 때마다 두께가 반이 된다고 가정하면 흑연 원자 한층의 두께인 0.335나노미터에 도달하는데 몇번 해야할까? 놀라지 마시라. 스물다섯번이면 된다. 1/2, 1/4, 1/8, 1/16…로 줄어드는 지수함수의 위력이다. 스물다섯번의 스카치테이프 조작은 아주 신중히 해도 한시간이면 충분하다. 노보셀로프 박사는 이렇게 흑연에서 탄소 원자 한층이 벌집모양으로 배열된 물질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그래핀(graphene)’이라고 한다.
누구나 스카치테이프로 그래핀 한층을 분리할 수 있게 되자 관련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그래핀에서 전류가 흐를 때 움직이는 전자가 양자역학적으로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특이성이 나타나면서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기초 및 응용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박사는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래핀의 물리학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은 한국인 김필립 하바드대 교수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으로 언론이 떠들썩했던 것이 기억난다. 김 교수는 흑연을 종이에 긁어서 그래핀을 떼어내려 시도했다고 한다.
흑연뿐만 아니라 층상구조를 가진 다른 물질도 원자 층 하나가 분리되어서 연구대상이 되었는데 그래핀처럼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 이황화몰레브데늄 이황화텅스텐 같이 반도체, 그리고 육방정계 질화붕소와 같은 부도체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류의 2차원 물질이 존재한다. 이런 물질에 대한 연구가 고체물리학의 커다란 줄기가 되었다.
고체물리학의 가장 뜨거운 주제 비틀림학
뿐만 아니라 2018년에는 미국 MIT의 야릴로-헤레로 교수팀이 새로운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연구된 그래핀을 두장 겹쳐서 약 1.1도 비틀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는 논문을 발표하자 다시 한번 학계는 끓어오른다. 다양한 2차원 물질을 두장을 겹쳐 비틀거나 여러장 겹쳐 비튼 경우, 또는 서로 다른 물질 층을 겹쳐 비튼 경우 등 무한한 다양성이 있다.
이런 물질들이 종종 아주 특이한 성질을 나타낸다. 이 분야를 속칭 비틀림학(twistronics)이라 부르며 현재 고체물리학에서 가장 뜨거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각의 기대감도 2차원 물질의 연구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