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진보정당…왼쪽 날개 누가 맡나
‘0석’으로 심판받은 정의당 … 조국혁신당 “민주당 왼쪽”
민주당 비례위성정당 들어간 진보당·기본소득당 ‘미지수’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받은 정의당이 원외정당으로 전락할 22대 국회가 ‘진보정당 부재’ 상태에서 시작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입법부의 왼쪽 날개를 담당할 진보정당 역할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를 놓고 진보진영의 움직임이 이어질 전망이다. 3석을 얻은 진보당과 함께 ‘민주당의 왼쪽’을 자임한 조국혁신당이 나섰지만 ‘진보정당’ 타이틀을 앞에 붙이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녹색정의당이 참패했다.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중심에 서 왔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 정당인 녹색정의당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 2.14% 득표율을 올렸다. 광주에서는 1.50%로 새로운미래(2.90%), 개혁신당(2.27%)에도 크게 밀렸다. 전북과 전남에서도 1%대 득표율을 얻는데 그쳤다. 전체 평균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1석이라도 배분받으려면 3%를 넘겨야 하는 봉쇄조항에 크게 못 미쳐 비례의석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지역구 후보로 경기 고양시갑에 출마한 심 후보도 낙선했다. 6석의 원내 3당 지위에서 원외정당 신세로 전환된 셈이다. 정의당이 원외정당이 되는 것은 2012년 창당 이후 12년 만이다.
정의당은 지난 21대 총선과 이어진 대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당 2중대’ 비판과 ‘정체성 논란’ ‘지도부 세대교체’ 등 논란이 확산됐고 외부의 비판과 내부의 분열이 극대화됐다. 지도부는 이를 극복해 내지 못했고 결국 사분오열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정의당은 녹색당과 선거연합을 구성해 최후의 심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정의당에 더 이상 의석을 주지 않으면서 ‘진보정당의 변화’를 강도 높게 요구했다.
정의당의 빈자리를 지역구 1석, 비례 2석을 확보한 진보당이 가져갈지, 민주당의 왼쪽을 자임한 조국혁신당이 가져갈지는 미지수다. 이들 정당이 정의당이 추구했던 캐스팅보터로서의 진보정당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진보당은 민주당과 비례위성정당에 들어가면서 차별화보다는 동조화에 몸을 실었고 조국혁신당 역시 민주당과의 관계를 ‘큰 집과 작은집’으로 설정해 견제보다는 연합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민주당 비례연합정당에 들어가 있는 기본소득당 역시 진보정당으로서의 역량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김준우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전날 해단식에서 “우리는 이제 조금 더 힘든 여정을 가야 한다”며 “즉각 사퇴보다는 5월 차기 지도부 선출시까지는 대표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모 인사는 “정의당이 어떤 리더십을 세울지 모르지만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당비를 내는 당원이 1만명대로 떨어졌다. 수십억원 적자의 이자는 비례득표를 2%이상 얻어 국고보조금으로 메워갈 수 있겠지만 당의 지역이나 지지기반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명맥을 이어가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제3 정당인 진보정당 부재는 거대양당의 극단적 대결을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3지대의 모 핵심관계자는 “3지대에 나와 있는 인사들이 다시 규합하거나 진보정당 재건을 모색할 수 있을텐데 현재의 정의당 플랫폼을 사용할지는 미지수”라면서 “정의당의 실패는 진보정당의 길을 다시 재편해야 한다는 점에서 숙제로 남아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