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지경학적 동맹대결 확전하는 미중

2024-04-15 13:00:01 게재

미국과 일본, 필리핀은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3자 정상회의를 열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앞으로 상호방위조약에 준하는 군사협력을 할 것을 결의했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맞서는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 사업의 일환으로 필리핀에는 ‘루손 회랑’을 출범시키기로 했다.

덕분에 필리핀은 철도 항만 등 기초적인 사회간접자본으로부터 청정에너지, 반도체 공급망까지 폭넓은 인프라건설의 기회를 얻었고,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경제동맹의 맹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미국 역시 필리핀을 새로운 우방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오커스(AUKUS)와 함께 중국의 해양진출을 가로막을 또 하나의 방어선을 갖게 되었다.

미·일·필리핀, 대중 견제 위한 군사동맹

미국의 동맹 구축은 비단 ‘국가 대 국가’ 간 관계 형성에 머물지 않는다. 미 정부는 최근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인 대만 기업 TSMC에 66억달러(한화 약 9조100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고, 텍사스주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에도 조만간 비슷한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국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중국의 거센 도전을 동맹국 글로벌 기업들의 힘을 빌어서라도 반드시 타개하겠다는 미국의 ‘반도체 굴기’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집중적인 동맹 형성으로 중국을 지경학적으로 고립시키는 동안, 중국은 미국의 턱밑인 남미국가들과 안보·경제 동맹을 맺으며 오히려 미국을 위협하는 모습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전기버스부터 태양광 패널까지 남미가 중국의 녹색기술 투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잠재적으로 미국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미국 정치인들의 우려를 인용해 남미에서 중국경제가 갖는 영향력을 소개했다.

전기자동차 태양광패널 2차전지 등 녹색기술은 반도체 AI 로봇기술 등과 더불어 장차 수십년간 미국과 중국이 자웅을 겨뤄야 할 첨단산업인데 여기에는 ‘하얀 석유’로 불리는 자원인 리튬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리튬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에 전세계 매장량의 60% 가까이 매장돼 중국이 이들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경우 안정적으로 리튬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남미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태양광 패널, 2차전지, 풍력 터빈 분야의 세계 최강자인 중국으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하고 직접 투자까지 받아 경제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남미에 수입된 태양광 패널의 99%, 전기자동차의 70%, 2차전지의 90% 이상이 중국산일 정도로 중국과 남미는 이미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다.

미중 갈등, 더욱 장기화되고 치열해질 가능성

중국과 남미의 상부상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부터 중국 수입품 대부분을 달러화 대신 위안화로 구매하기 시작했고, 브라질 역시 중국과의 국경 간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으로서도 전 세계 교역 과정에서 위안화 사용을 늘려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던 만큼 남미국가들의 위안화 사용을 반길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중국은 남미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방법으로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도 남미 기업을 통해 미국 시장에 우회 수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또 중국이 오는 11월부터 페루에 직접 통제가 가능한 심해항구를 갖게 된다는 최근 외신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 유사시에는 남미를 전진기지 삼아 미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중갈등은 각 진영의 동맹관계 형성으로 점차 확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분쟁은 앞으로 더욱 장기화되고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