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10년 '반복되는 참사, 책임지지 않는 정부'
대형 참사 때마다 재난대응체계 변화
전문가들 “국가책임 인정이 선결과제”
‘대응·복구’보다 ‘예방·대비’ 변화 필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우리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유사한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의 부실대응이 부른 인재라는 점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참사와 159명이 숨진 이태원참사는 닮아있다. 2017년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나 2018년 45명이 숨진 밀양 세종병원 화재도 다르지 않았다. 2020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38명이 숨졌고,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7월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오송지하차도참사는 ‘안전한 사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낳았다.
◆참사 때마다 제도개선 =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재난대응 체계를 개선해왔다. 하지만 책임소재가 빠져있는 탓에 유사한 재난의 반복은 막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참사는 재난대응 체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먼저 달라진 재난안전 분야 제도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국무총리로 격상(2014년 12월)한 것이다. 대형 재난은 때론 특정 부처·기관을 넘어 국가 전체의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제도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공동 차장제(2020년 6월)로 진화했다.
재난안전 예산도 대폭 확충됐다. 2016년 14조6000억원이던 것이 올해는 25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제도적으로는 범정부 안전예산 사전협의 제도가 신설(2014년 12월)되기도 했다.
소방안전교부세와 재난안전특별교부세가 신설(2014년 12월)된 것도 큰 변화다.
세월호참사 이듬해 만들어진 이 예산항목에는 지난해까지 12조8000억원(소방안전 5조6000억원, 재난안전 7조2000억원)이 배정됐으며, 노후 소방·재난안전 시설을 집중 개선하는데 기여했다.
실제 소방안전교부세로 인해 소방관 개인안전방비를 100% 구비하게 됐다. 2014년 보유율은 86.7%였다. 2014년 22.5%였던 구조장비 보유율도 100%가 됐다. 소방장비 노후율은 2014년 22.8%였는데 2022년 10.5%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구조장비 노후율도 21.0%에서 1.7%로 낮아졌다. 재난안전특별교부세는 대구 서문시장 화재 응급복구비 지원(2016년 12월), 강원 산불피해 항구복구비 지원(2019년 6월), 코로나19 지원(2020년 2월) 등 대형 재난복구에 톡톡히 역할을 했다.
◆현장중심 대응 강조 = 현장 중심의 재난관리체계 전환도 이루어졌다. 우선 재난현장의 긴급구조 지휘권이 명확해졌다. 재난현장의 긴급구조와 관련해 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장인 소방서장 또는 해양경찰서장의 지휘권이 확고해진 것이다. 이 또한 세월호참사가 가져온 변화다.
이태원참사를 겪고 난 뒤에는 주최자가 불분명한 지역축제 등에 대한 지자체장의 안전관리 책임이 강화(2023년 12월)됐다.
24시간 운영하는 기초자치단체 종합상황실도 크게 늘었다. 2023년 1월 49곳 뿐이었는데 불과 1년 만인 그해 12월에 110개가 됐다. 단체장의 재난관리교육이 의무화(2023년 12월)됐고, 시·도지사에게 재난사태 선포 권한이 부여(2024년 1월)됐다.
세월호참사의 교훈 중 하나인 골든타임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국민들이 위급상황을 알리는 긴급신고가 112, 119 두 번호로 통합(2016년 10월)됐고, 경찰·소방·해경 간 공동대응 요청 시 현장출동이 의무화(2023년 10월)됐다. 기상 관련 재난문자는 기상청이 직접 발송해 신속성을 높였다. 오송지하차도참사를 겪은 뒤에는 지하차도에 물이 15㎝만 차면 통행을 차단하는 새로운 통제기준이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재난대비훈련이 의무화(2014년 12월) 됐고, 지난해부터는 신종·복합재난 대응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레디코리아 훈련이 도입됐다. 생활 속 위험요소를 손쉽게 신고할 수 있는 안전신문고가 개통(2014년 9월)되기도 했다. 2016년 어린이 재난안전훈련이 도입됐고, 어린이안전기본법이 제정(2020년 5월)됐다.
◆“민간주도 조사위 상설화해야” =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에도 재난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라’고 요구한다. 정부나 대응기관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세월호참사를 조사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2022년 9월 총 3년 6개월의 공식 활동을 마치면서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54개의 권고안을 내놓았는데, 그 중 첫번째가 ‘국가 책임인정과 사과’였다. 하지만 이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태원참사 때도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재난의 유형이 점점 복잡·다양화되면서 겪어보지 않은 재난을 예측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최소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고 대응·복구도 중요하지만 예방·대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재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목해야 할 것은 겪지 않아도 될 사고까지 겪고 있는 현실”이라며 “과거의 교훈을, 선진국의 선행 사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 대책으로 민간주도의 중앙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느 권력기관의 눈치도 보지 않는 독립된 조사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송창영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은 “책임 있는 조사위원회를 상설화해 재난에 대한 원인규명과 대책수립, 제도개선을 체계화해야 반복되는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