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2층 대합실은 ‘통곡의 바다’
사명자 명단 공개되자 가족 ‘절규’
정부 우왕좌왕 … 유족 항의 봇물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우리 아들.”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인 무안공항 2층 대합실은 통곡의 바다였다. 아들의 생존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60대 엄마는 사망자 명단이 공개되자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175명 탑승객 중 일가족이 단란하게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거나 첫 해외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된 안타까운 희생자들 사연이 이어졌다. 광주에 사는 20대 남성은 사고직전 여객기 안에 있던 어머니와 주고받은 카톡을 공개했다. 어머니는 오전 9시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하는 중”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언제부터 그랬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사고를 직감한 듯 “방금, 유언해야 하나”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이 끊겼다.
영광군 군남면 일가족 9명도 아버지 팔순을 기념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화순군 현직 공무원 3명과 퇴직 공무원 5명은 동반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군청에 다닌 누나를 잃은 이 모씨는 “5남매라 독수리 5형제라 불렸는데 한명이 가버렸다”고 망연자실해 했다.
이날 오후 7시쯤 2층 대합실에 유족들이 지낼 간이용 천막 100여개가 설치됐고, 몸을 가누지 못한 유족들은 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훔쳐냈다. 유족들은 이날 뜬눈으로 생존 소식을 고대했지만 탑승객 181명 중 2명만 빼고 179명이 모두 사망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제주항공은 2018년 4월 무안공항에 처음 취항했으나 해외 정기편 운항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공항에 정기 취항한 지 21일째에 사고가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유족들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당국의 대처는 미흡했다.정부와 전남도 등은 이날 오전 9시 3분쯤 최초 신고가 접수되자 곧바로 소방대원과 경찰 300여 명이 투입돼 화재 진화와 승객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초기 착륙 지점과 여객기 잔해가 남아있는 거리가 300m 정도로 너무 멀고, 기체가 심하게 훼손돼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군과 경찰, 소방대원 등이 한꺼번에 구조 현장에 투입되면서 수습현장을 지휘할 조직이 없어 혼선을 겪는 모습까지 보였다. 수습 현장에 있었던 모 국회의원 보좌관은 “세월호 초기 수습 때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사고 수습 매뉴얼이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대응 미숙은 사망자 명단 공개 때도 발생했다. 당국은 이날 오후 4시쯤 1차 사망자 명단 22명을 공개했다. 현장에서 수습한 시신의 소지품과 지문 등을 대조해 명단을 공개했는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탑승객까지 포함해 일부 유족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특히 사망자와 유족을 확인하는 절차가 늦어지면서 일부 유족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동생을 잃은 박 모씨는 “정부를 믿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저희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놓고 목소리를 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 유전자 확보도 준비 부족으로 늦어졌다. 당국은 이날 오후 9시부터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유전자 검사는 사고현장에서 수습한 신체 일부의 유전자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다.
하지만 준비가 늦어지면서 유가족들이 유전자 검사실 앞 복도에 주저앉아 1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검사실 위치를 안내하는 표지판도 없고 준비도 늦어져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사고 발생으로 무안공항 폐쇄도 길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사고 수습을 위해 내년 1월 1일 오전 5시까지 무안공항을 폐쇄했다. 하지만 사망자 179명 중 신원이 확인된 탑승객은 모두 140명인 만큼 나머지 39명의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사고 현장을 수색하기 때문에 공항 재개가 상당 기간 늦어질 전망이다. 전남도는 이에 따라 출입국 지연에 따른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신원 확인이 늦어지면서 공항 재개가 다소 늦어질 것 같다”면서 “전세기 출입국 지연에 따른 피해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