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남은 숙제 ② ‘연금개혁’ 걸림돌 수두룩
여당 지도부 공백·거대양당 강경대치…개혁과제 ‘뒷전’ 예고
국회 연금특위 절반이상 ‘낙선’… 입법결정권 발휘할지 의문
민주당 ‘채 상병 특검법’ 주력 “지금 연금개혁 할 때냐”
국민연금 ‘더 내는’ 결단 부담 … 공론화위 결과는 ‘참고용’
한 달여 남은 21대 국회에 ‘연금개혁’이라는 숙제가 놓였지만 크고 작은 장애물이 적지 않다. 이달말 국민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이 포함된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합의안을 도출해야 하는 국회 연금개혁특위 위원들의 절반이상이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힘이 빠진 상태다. 4.10 총선에서 대패한 여당 지도부는 공백상태에 빠져 있고 압승한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과 이태원참사특별법 통과를 강행할 태세다. 거대양당간 힘겨루기가 강도높게 진행되면서 당장 해결해야 하는 현안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는 국민연금 개혁을 뒤로 미뤄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6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 따르면 4일간의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를 모두 마친 다음날인 오는 22일에 김상균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설문조사 결과를 포함한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주요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시민대표단은 국민연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방안과 더 많이 내고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받는 방안을 놓고 벌인 토론 결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연금개혁을 위한 500명의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는 전문가 발제·토의, 질의응답, 분임토의 등을 지난 13일부터 4차례에 걸쳐 진행해 오는 21일 마무리된다. 지난 1월 31일 여야 합의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의 국민 의견 수렴과정이 석 달 가까운 시간동안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공론화위 결론은 공론화위 의견일 뿐 =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시민대표단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공론화위원회의 ‘국민 대표성’에 대해 수용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최종결과를 내놓을 경우 이를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연금개혁특위에서 수용할 것이냐가 쟁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5월 정치개혁특위에서 이뤄진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공론화위원회의 공론조사 결과는 사실상 수용되지 않았다. 이 공론조사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선출방식, 지역구·비례대표 의석비율과 의원 정수 등을 500명의 시민참여단이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공론화위에서 결과보고서를 들고 정개특위에 보고했을 때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론화위 결론의 실효성과 편향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 조해진 의원은 지난해 6월 정개특위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선거법 결론 내릴 때 의사는 그 500 분의 의사가 아니고, 공론이 아니고 5000만(명)의 의사”라며 “그러면 5000만(명) 사이에 숙의와 공론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의견 조정을 통해서 최종 결론이 나야 되는데 이게 답이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어 “그 과정이 없으면 결국은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것하고 거의 똑같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500명 공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라며 “5000만 국민의 공론화 과정, 숙의 과정을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했다. 김상훈 의원은 “이번에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는 워킹그룹의 구성에 대한, 바이어스(bias)에 대한 이의 제기도 있었다”며 “토론 발제 과정에서 주로 정치학자분들에 의해서 주도된, 어떤 그런 경도된 여론조사가 나왔을 가능성이 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정하 의원은 “세 차례 조사 결과가 나왔으면 이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연금개혁’ = 총선을 끝낸 거대양당이 한 달 여 동안 집중해야 할 일들이 많아 연금개혁이 뒷전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 다수당인 민주당의 최대 관심사는 ‘채 상병 특검법’이다. 대통령 거부권에 따라 국회로 돌아온 이태원참사 특별법 처리도 21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로 선정해 놨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등 민생과 관련한 현안 역시 21대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게 민주당 원내 지도부의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퇴로 지도부 공백상태에 빠져 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결정권을 가진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는 것이다. 매우 예민한 부분들을 결정해야 하는 연금개혁이 힘을 받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당 소속 모 연금개혁특위 의원은 “당내에서도 지금 연금개혁을 할 때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각 당 지도부에 연금개혁특위에서 결정하고 결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맡겨줘야 하는데 그렇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22대에 가면 원구성이나 특위 구성하는 데도 오래 걸릴 것이고 특검 등 현안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 대선이 있어 선거가 끝난 지금이 ‘더 내야 하는’, 그래서 인기가 없는 연금개혁을 유권자 눈치 보지 않고 결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국민연금 재정이 저출산고령화로 위기 상황에 놓여있지만 현재는 국민들이 납부한 금액이 고령자에게 지급하는 것보다 더 많은데다 수익률도 좋아 위기감을 갖기 어렵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시급한 현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받게 될 경우 연금재정 고갈시점이 30여년 후인 2055년이라는 점도 ‘다소 먼’ 이야기로 들릴 가능성이 있다.
연금개혁특위 자체의 힘이 빠진 것도 연금개혁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연금특위를 맡고 있는 15명 의원 중 절반이상인 8명이 22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여기에는 여야 간사까지 포함돼 있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21대 국회에서 중요한 성과를 내 보겠다는 의지가 강할 수 있지만 여야 지도부가 입법권까지 맡길지는 불확실하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