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노동시장
정년까지 정규직 유지하는 고령 노동자 14% 불과
비정규직·비취업 상태 고령층 40% 넘어 … “경력단절 고령자 재취업 지원, ‘고령친화적’ 근무환경 개선해야”
인구고령화가 가속화되고 1000만 노인시대 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고령자의 노동참여 확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60세 이상 정년의무화 법안이 시행된 이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연령이 증가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에는 아직 60세 정년제가 안착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수급개시 시점이 2033년부터 65세로 늦춰지면서 최대 5년간의 소득공백이 발생한다. 공적연금 수급률이 낮고 수급하더라도 노령연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해 2033년까지 65세를 목표로 정년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을 제시했다. 반면 정부는 법적 정년연장 방식이 아니라 사업주에게 △정년연장 △촉탁직 등을 통한 계속고용(재고용) △정년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더디기만 하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노령연금 수급 이후에도 많은 고령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재진입한다. 다수는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 영세자영업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주된 일자리에서의 고용기간 연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다변화된 은퇴경로를 포괄하는 맞춤형 노동시장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월간 노동리뷰 3월호 특집으로 ‘고령 노동시장 현황과 과제’를 실었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노동패널조사(KLIPS) 13차(2010년)~25차(2022년) 자료를 토대로 ‘60세 전후 고령자의 노동궤적 유형과 특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55~62세 고령층의 노동시장 지위 변화를 조사한 결과 60세를 즈음해 정규직 일자리에서 이탈한 ‘정년퇴직형’은 전체 고령층의 4.7%였다. 정년 이후 다니던 기업에 재취업하는 식으로 62세까지 일자리를 유지하는 ‘정규직 유지형’은 9.8%였다.
정년까지 정규직 일자리를 유지한 고령층(정년퇴직형+정규직 유지형) 비중이 14.5%에 불과했다. 60세 이전에 조기 은퇴해 다른 기업에 취업한 ‘조기퇴직 정규직 재취업형’(6.2%)을 포함하더라도 정년까지 정규직을 유지한 비율은 20% 수준이다. 주된 일자리를 정년까지 유지하는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다.
반면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실직과 재취업을 반복하는 ‘비정규직 유지형’이 전체 고령층의 18.4%, 자영업 등 ‘비임금 유지형’은 24.4%, 실업 등에 있는 ‘비취업 유지형’이 23.4%로 나타났다. 50대 후반에 비정규직이나 비임금 일자리(자영업 등)에서 정규직으로 진입한 경우는 2.8%였다.
‘정규직 유지형’의 69.4%는 남성이고 대졸 고학력자가 40%다. ‘비정규직 유지형’의 53.8%는 여성이고 40.1%는 고졸이었다.
●‘비정규직 유지형’ 임금 ‘정규직 유지형’의 절반 = ‘정규직 유지형’은 월 290만원 안팎의 노동소득과 주 41시간 내외의 근로시간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비정규직 유지형’은 근로시간이 ‘정규직 유지형’의 66.1%로 짧았지만 노동소득은 절반(50.3%) 수준이었다. ‘비임금 유지형’은 노동소득이 ‘정규직 유지형’의 82.9%로 낮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근로시간은 오히려 14.7% 더 길었다.
‘정규직 유지형’의 66.0%는 5~100인 중소기업 종사자였고, 22.3%는 100인 이상 대기업ㆍ중견기업 종사자였다. ‘정년퇴직형’의 56.4%는 중소기업 종사자였고 43.5%는 100인 이상 대기업·중견기업 종사자였다.
이승호 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의 고위직 직원이 정규직을 유지하고(정규직 유지형) 정년제 운영 비중이 높은 대규모 기업과 공공부문, 노조가 있는 기업의 근로자가 ‘정년퇴직형’에 속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년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했거나 정년 이후 재고용 대상에서 제외된 고령자, 경력단절 이후에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고령자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패키지 형태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정년연장이나 고용연장과 같은 정책은 근로조건이 좋은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사회적인 효과가 클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고령자가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 집단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산재 47% 55세 이상에서 발생 =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령 취업자들의 노동시장 특성을 분석해 취약한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노출 정도를 확인하고 고령자들의 산재 특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고령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안전한 일터 조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고령자들은 1987년에 도입된 국민연금 가입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달리 65세 이상 고령자들 중 35.3%가 여전히 노동시장에 남아서 일하고 있다.
2021년 전체 산업재해자는 12만2713명으로 이 가운데 5만8185명(47.4%)이 55세 이상이었다. 같은해 55세 이상 산업재해율은 1.12%로 55세 미만의 산업재해율(0.44%)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는 지역별 고용조사 근로자 수(상용직 교수 및 초중고 교사 제외, 상용·임시 공공기관 종사자 제외)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다.
산업별 산업재해율은 모든 산업에서 55세 이상이 55세 미만보다 높았다. 특히 55세 이상 고령근로자들은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임금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을 기록했다.
종사상지위별 55세 이상 산업재해율은 일용직 3.86%, 상용직 1.28%, 임시직 0.10% 순이었다. 55세 이상 사망만인율은 일용직이 7.53(퍼밀리아드)로 상용직(2.54)이나 임시직(0.10)보다 매우 높았다.
연구진이 ‘2020년 제6차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통해 연령별 유해위험요인 노출 정도를 확인한 결과 55세 이상 고령자들은 55세 미만보다 진동, 소음, 높거나 낮은 온도, 먼지, 화학물질 등 물리적 위험요인에 대한 노출 정도(7점 척도)가 모두 높게 나타났다.
사고발쟁유형별로 보면 사업장위험 비중은 55세 미만은 큰 변화가 없지만 55세 이상은 2017년 9.9%에서 13.2% 증가했다.
55세 이상 사고발생 유형에서 시설안전·가해성·기인물 등 3개 재래형 재해의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박 부연구위원은 “55세 이상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 근무환경 개선 및 산재예방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며 “고령화 대응의 가장 바탕이 되는 원칙은 작업요구도(부하)를 전체적으로 낮추고 노동시간을 주 40시간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보고서는 정부의 고령자 고용 관련 정책이 취업이나 계속고용 지원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하며 산업현장에서 고령자를 배려하는(age-sensitive) 작업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고령 근로자용 표준작업환경 및 작업지침을 보급할 때 신체 능력을 고려해 65세 미만과 70세 미만으로 구분해 제작하고 고령 근로자 대상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며 “중장기 정책으로는 고령 취업자 대상 정기 실태조사와 고령자 대상 별도의 재해통계 산출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