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우크라 지원 놓고 온도차
미, 84조원 규모 지원안 하원 통과 … 유럽연합, 말로는 지원·실천은 미적지근
미국은 6개월의 표류 끝에 최근 608억달러(약 84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23일(현지시간)로 예상되는 상원까지 통과되면 금주 내 지원 착수도 가능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하원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뒤 2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신속한 무기 공급을 거듭 약속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예산안이 상원 통과 및 법제화하는 대로 우크라이나의 전투 현장과 방공망 관련 긴급 수요를 충족하도록 안보 지원 패키지를 신속히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지원안이 법제화하는 대로 제공할 경제 지원이 우크라이나가 재정적 안정을 유지하고 공격을 당한 중요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번 지원안은 우크라이나가 유럽-대서양으로 통합되는 길로 가는 과정에서의 개혁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EU는 22일 우크라이나 방공체계 추가 지원을 논의했지만 정작 보유 국가들이 지원을 주저하면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룩셈부르크에서 외교이사회 결과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일부 회원국들이 방공체계 지원에 기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구체적 지원 계획은 없었음을 시사했다. 보렐 대표는 “EU 차원의 패트리엇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에 결정은 각 회원국 몫”이라며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회원국들이 분명하게 인지했으니 이제 돌아가 결정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주 열린 EU 정상회의와 EU 다수 회원국이 속해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 결과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수준이다.
더욱이 EU는 이날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애초 외교장관회의로 예정됐던 회의 형태를 외교·국방장관 회의로 확대했으나 회원국들의 입장변화를 유도하는 데는 실패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공습에서 민간 기반 시설을 보호하려면 최소 7대의 방공 체계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대러 방공체계 중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훈련받았고 실전 운용 경험이 있는 패트리엇(PAC) 미사일을 희망한다. 패트리엇은 항공기·순항미사일·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지상 기반 이동식 미사일 방어체계로 EU에서는 독일·그리스·네덜란드·폴란드·루마니아·스페인·스웨덴 등 7개국이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총 12개 포대를 운용 중인 독일만 2개 포대를 우크라이나에 이미 전달한 데 이어 최근 1개 포대를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
나머지 패트리엇 보유국들은 패트리엇 포대가 방공망의 핵심 방어 체계라는 점을 이유로 지원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트리엇 포대를 새로 생산하는 데에만 길게는 2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게 되면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케 브라윈스 슬롯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패트리엇을 보내는 데 왜 주저하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보유 재고를 줄여도 될지 다시 검토 중이지만 아마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고,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무장관은 “스페인이 보유한 전력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여부에 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팔 욘손 스웨덴 국방장관은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재정적 기여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폴란드처럼 러시아,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하는 지리적 특성상 현실적으로 지원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장기 표류하던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이 하원 문턱을 넘으면서 일단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유럽의 태도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우리가 함께 행동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다”며 “지금은 행동할 때지, 토론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