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전문성·역할 강화하고 업무 명확화”
초고령사회 대응
간호사 업무조정
응급·중환자 재원일 수 줄이고 지역사회 돌봄 기여 … 보건복지부 “제도화 시행”
한국사회가 보건의료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문제 해결의 중심에 간호사들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이어 현재 1만여명의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이탈하면서 발생한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데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시행되고 있는 ‘간호사 업무 관련시범사업’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 명확화와 확대 등 제도화 논의를 촉발·확산시켰다. 간호사는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건강지원센터 방문간호센터 요양원 보건소 노인복지시설 재활시설 아동보호기관 산업현장 요양병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임상 현장과 지역사회에서 간호사 역할이 커지고 전문성이 세분화되는 현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간호사 관련 업무 규정이 불명확해 ‘불법성’과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간호계에 퍼져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간호계 안팎의 요구는 오래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의 의료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금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제도화 할 때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정부도 현재의 의료공백 해결에 전문간호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입장이다. 간호사 역할 강화와 방안을 전문가들에게 듣었다 인구 고령화시대 국민들의 건강과 의사 부족 등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간호사의 역할 강화가 요구된다. 의료기관 안팎에서의 간호사 전문성을 강화하고 업무범위를 명확화하는 등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가 1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주최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간호사의 전문성과 역량을 키우는 것은 필수의료 정책의 중요한 영역”이라며 “제도화를 통해 법적 제도 지원과 업무 범위 명확화, 체계적인 교육을 가능하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23일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장은 “전문간호사뿐만 아니라 일반간호사 진료지원간호사 등 업무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라 다양한 영역 간호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에 전문간호사 가치 높아 =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전문간호사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복지부와 간호계에 따르면 전문간호사는 의료법 제78조에 따라 △간호실무 3년 이상 경력 △대학원 전문간호사 과정(2년 이상)이수 △보건·마취·정신·가정·감염관리·산업·응급·노인·중환자·호스피스·종양·임상·아동 등 13개 분야에서 복지부 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하는 등 3가지 조건을 모두갖춰야 한다.
김성렬 고려대 간호대학 교수에 따르면 해외 연구 사례를 보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전문간호사 활동이 환자 증상 개선에 기여했다. 호주의 연구 사례를 보면 전문간호사가 있는 병원의 응급실에서 환자에 대한 초기 대처가 유의미하게 잘 이뤄졌고 전문간호사가 없는 응급실보다 환자의 재원기간도 줄어들었다. 일본에서는 중환자실에전문간호사가 진료에 참여한 경우에 환자의 재원기간이 줄고 재활을 시작하는 기간을 앞당긴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간호사의 치료 자체가 독립적으로 환자의 입원 기간을 줄이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위해 13개 분야로 나뉜 전문간호사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교수는 “임상현장의 현실에 맞춰 상급실무 전문간호사와 감염-정신-마취 등 총 4개로 통합 조정하고 교육과정과 자격시험을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간호계도 관련 개선안을 논의 중이다. 전문간호사협회는 1월 ‘전문간호사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하고 13개 분야 대표가 참여해 통합을 위해 선행연구 검토 및 단체 의견 모으고 있다.
홍정희 삼성서울병원 간호부원장은 “요즘과 같이 전공의가 떠난 상황에서 전문간호사를 활동하는 병원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며 “향후 정부의 의료개혁에 따라 전문의 중심병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전과 질을 담보하고 전문성을 갖춘 전문간호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혜 울산대 임상전문간호학 교수는 “지금까지 전문간호사 1만7346명이 배출됐지만 실제 활동 중인 전문간호사는 적은 편”이라며 “전문간호사는 법적 테두리 안에 있었지만 구체적인 업무 범위가 법제화되지 않아 업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보상체계와 행위에 대한 수가가 제도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담간호사 시범사업 후 안착해야 = 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이 발생하자 정부는 2월 27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전담간호사(PA, 진료지원인력)’들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일부 의사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이전에 주로 의료기관 안에서 수술장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 상황 시 보조 등 의사의 의료행위 일부를 대신해왔다. 활동 간호사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불안감 속에 일해야만 했다.
이지아 경희대 간호과학대 교수는 “간호 영역의 고도화와 정밀화로 특수분야 간호를 전담하는 간호사가 (의료기관별로)자생적으로 양성되고 있었으나 교육과정과 업무범위 역할 명칭 등이 불분명하고 혼재돼 사용되고 있었다”며 “간호사 경력 개발을 위해 직무역량 중심의 전담간호사 분야별 교육 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95년부터 특정 분야에서 수준 높은 간호 실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정간호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19개 분야별로 800시간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0개 분야에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전담간호사’ 공인제도가 있다. 일정한 실무·임상 경력과 교육을 충족한 간호사가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전담간호사가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복지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의 업무범위를 근거로 간호협회가 전담간호사 교육과정을 마련하고자 한다”며 “임상경력 1년 이상인 간호사를 대상으로 수술·외과·내과, 경력 2년 이상자를 대상으로 응급·중증 분야에 대한 교육을 먼저 이달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신연희 분당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은 “의료기관은 자체적으로 위임업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전문의 개인이 업무를 위임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며 “간호사의 업무 보호를 위해 업무 범위, 권리, 책무 담은 간호법을 통한 법적 보호 체계 갖춰 전문·전담간호사의 역할을 명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간호 활동 강화 = 우리나라는 65세 노인인구비율이 전체인구의 19.2%로,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20% 이상)에 근접하고 있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2명 중 1명이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2021년 기준 평균수명은 남자 80.6세, 여자 86.6세로 이른바 ‘유병장수’하고 있다. 노인병의 특징으로는 여러 가지 질병이 동시에 생기는 다발성 만성질환으로 인한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인한 기능장애의 비가역성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 생애 중 노인기에 만성질환 관련 의료서비스와 돌봄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장은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60만~100만명이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간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학장은 이어 “지역사회에서 전문간호사들이 독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야 한다.전담간호사와 일반간호사가 함께 방문간호에서 할 일이 많다. 팀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전문간호사 제도나 전담간호사 지원이 따라가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문의 중심병원 등 정부의 정책 방향을 실현하기 위해 전담간호사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직역과의 논의를 통해 전담간호사의 제도화를 적극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