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통신비 인하를 위한 경제학
22대 총선이 야당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단통법 폐지, 통신비 세액공제 신설, 공공 와이파이 확대, 청년을 위한 저가요금제 출시 등 통신비 인하가 공약에 포함되었다. 사실 통신비 세액공제를 제외하면 기존 정책과 차이가 크지 않다. 3월 말 정부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추진 성과를 발표했다. 데이터 이용량에 따른 5G 중저가 요금제를 확대하고 연령 및 계층별 특성을 반영한 요금제도 신설했다. 정부는 정책효과로 연간 5300억원의 가계통신비 절감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1인 이상 가구 월평균 가계통신비 지출은 12만9000원으로 2020년 말 11만9000원보다 1만원 증가했다. 지금까지 통신비 인하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었고 선거마다 여야 모두 통신비 인하를 공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계통신비가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단말기와 OTT 구독료 비중 증가로 가계통신비 부담 늘어
기업은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높은 가격에 판매해 이익을 창출한다. 통신사도 이동통신망을 3G에서 LTE, 그리고 5G로 진화시키면서 전송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스마트폰도 매년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새로운 기능이 탑재되고 성능도 개선되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같은 OTT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콘텐츠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 진화로 이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통신요금, 단말기 구입비용 및 구독료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통신비에서 단말기 가격과 OTT 구독료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통 3사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월평균 가입자당 수익은 2012년 3만1000원에서 2017년 3만2000원으로 올랐다가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으로 2021년 2만9000원으로 다시 감소했다. 반면 스마트폰 가격은 대폭 상승했다. 2014년 아이폰6 플러스 출고가가 약 50만원선이었으나 2023년 아이폰15 프로맥스의 출고가는 190만원으로 대폭 상승했다.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 같은 OTT 구독 요금도 30~40% 인상되면서 가계통신비에 부담을 주고 있다. 기존에는 통신비가 통신서비스 요금만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통신요금에 단말기 대금, 그리고 OTT 구독료 등이 포함되는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정부가 추진한 5G 중간 요금제 확대 및 알뜰폰과 제4이동통신사를 통한 경쟁 활성화도 통신서비스 요금인하에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스마트폰 가격이나 OTT 구독료에는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특히, 현재 월 3만원의 가입자당 수익으로는 이통사에게 OTT 결합할인이나 단말기 보조금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애플이 국내 단말기 시장을 과점하고 있어 제조사 보조금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알뜰폰이 저가요금제를 출시할 수 있는 이유는 단말기 보조금을 제공하지 않고 오프라인 대리점 대신 온라인 직판을 통해 유통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즉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단말기를 구매한 후 자신의 이용패턴에 맞는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통신비를 낮췄다.
정부 직접 개입보다 정교한 시장경쟁구조 설계해야
반면 이통사들은 여전히 대리점과 판매점으로 구성된 거대한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유통비용은 원가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통신비 인하를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유통비용을 줄이고 동시에 동종 사업자간 경쟁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통신서비스는 이통사끼리 단말기는 제조사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해외 제조사들도 국내시장에 성능 좋은 중저가 단말기를 적극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통신비 인하를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요금에 개입하기보다는 정교한 시장 경쟁구조를 설계해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 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