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역 대학가서 ‘친팔' 반전시위
에머슨대 등서 수백명 체포·졸업행사 취소도 … NYT “1968년 반전운동 유령 돌아왔다”
NYT는 현 상황을 두고 “1968년 반전 운동의 유령이 돌아왔다”고 평가하면서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한 사태가 올 8월 민주당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재현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일부 대학들은 다음달 졸업식 시즌을 앞두고 교내 정리를 위해 경찰 투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졸업식 본행사를 취소하는 학교도 나왔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다음 달 초순 졸업식이 예정된 서부 서던캘리포니아대(USC)는 시위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매년 대규모로 이뤄지던 메인 무대 행사를 취소했다. USC는 25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공지한 글에서 “전통적으로 학생과 가족, 친지 등 6만5000명이 모이던 메인 무대 행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동부에서 남부, 서부까지 학생-경찰 대립 격화 = 18일 동부의 아이비리그 명문인 컬럼비아대에서 학생 등 시위대 100여명이 강제 연행된 후 이와 유사한 천막 농성과 시위, 경찰에 의한 학생들의 체포 사태가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이날 이후 동부의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에머슨대(보스턴), 남부의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와 미시간대, 서부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에서 천막 농성이 벌어졌고, 24일엔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선 천막 시위대 9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앞서 예일대에서도 천막 시위대 45명 이상이 체포됐고, 미네소타대 트윈 캠퍼스에선 9명이 연행됐다. 남서부 뉴멕시코대에선 학생과 교수, 교직원들이 가자지구를 지원하는 평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5일 에머슨대에서는 시위대 108명이 경찰에 체포됐고, 학생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4명이 다쳤다고 보스턴 경찰국이 밝혔다. CNN 계열 지역방송 WHDH의 영상에는 진압 장비로 무장한 경찰이 밤새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시위대를 몰아가는 모습이 담겼다. 에머슨대는 이날 수업을 모두 취소했다.
하루 전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도 시위와 관련해 34명이 체포됐는데, 텍사스주 경찰이 기마대를 포함해 진압봉 등으로 무장한 채 물리력을 행사하며 강제해산에 나섰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에서도 경찰이 시위대의 텐트를 철거하면서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현장에 있던 AP 기자들은 최소 17명이 연행됐다고 전했다.
CNN은 경찰이 시위 진압에 후추 스프레이·후추탄 등을 사용했다고 전했으며, 시위 주최 측은 “경찰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 조지아 지부는 성명에서 “에머리대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과 최루탄·고무탄을 사용했다”며 “학교 측과 경찰은 현재 에머리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버드대에서는 24일 학교 측이 광장을 봉쇄했지만 전날 ‘하버드 학부 팔레스타인 연대위원회’ 활동금지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고 시위대가 농성 텐트 14개를 설치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서도 25일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중심부에 약 30개의 시위 텐트가 설치됐고, 워싱턴DC의 또 다른 대학교인 조지타운대에서도 이날 오전 약 100명의 시위대가 교내 힐리홀 계단에 모여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란 구호를 외치다 조지워싱턴대로 이동해 이 대학의 시위대와 합류했다고 WP가 전했다.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대도 이날 오전 대학원생 2명이 농성 텐트를 치다가 무단침입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 대학에서 텐트는 철거됐지만 시위는 계속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뉴욕대에서 시위대 133명이, 예일대에서 48명이 각각 경찰에 연행됐다.
◆학생들 “가자전쟁 반대, 이스라엘과 관계 끊어라” =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기업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이스라엘 자체와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학생들은 대체로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업체와의 거래 중단 △ 이스라엘 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받는 자금 매니저로부터의 기부금 수락 중단 △이스라엘로부터 받는 자금을 더 투명하게 공개할 것 △시위로 징계받거나 해고된 학생·교직원에 대한 사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수 캠퍼스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위한 학생 연합’ 등 학생 단체에 의해 조직되고, 이슬람교와 유대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과 교직원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