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연준은 어디까지 정치적일까

2024-04-26 13:00:01 게재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대결을 벌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미국 내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동률의 지지도를 보이는 등 팽팽한 대결 양상이다. 올해 초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오차범위 안팎에서 뒤지는 형국이었다면 대선을 6개월여 남겨놓고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그런 때문인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결정 방향을 놓고 예측이 무성하다. 바이든을 지원하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대선 전에 내리려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 데다 대선 전에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연준이 일부러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미 연준의 금리결정에 정치적 편향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과, 정치로부터 연준의 독립성을 높게 평가하는 시각들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연준 독립성 훼손한 최악의 의장 아서 번스

시장에서 연준과 정치를 연결 지어 보는 것은 과거 정치색 짙은 의장들로 인해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됐을 때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심하게 망가졌던 흑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서 번스 의장이다. 1968년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독립적인 연준보다 백악관의 말을 잘 듣는 연준을 원했다.

아서 번스는 연준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었지만 닉슨 대통령 고문으로 일해 딱 적임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1969년 10월 임명 이후 이듬해 7월까지 미 증시는 30% 폭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 번스는 연임을 원했고 백악관이 수용하게 되는데 1973년에서 1974년까지 미 증시는 50% 하락하고 만다. 게다가 1974년 마지막 달에 12.3%까지 인플레가 치솟았다. 번스는 물가를 잡는다며 기준금리를 13%까지 높였다.

그러나 디스인플레이션이 제대로 확인되기도 전에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해 성급하게 금리를 인하하면서 살인적인 1970년대 인플레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연준의 역사에 ‘아서 번스의 실수’라는 치욕적인 용어를 남겼다.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한 지미 카터는 번스를 내보내고 후임으로 월리엄 밀러를 임명했는데 이 또한 정치적 임명이 빚은 실수였다. 밀러는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최초의 연준의장으로 연준 근무 경험도 없고 법을 전공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주식시장은 10% 하락했고 달러가치가 40%까지 폭락했다. 물가가 더 치솟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취임 11개월 만에 사임하고 이후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가 등장하면서 연준은 겨우 제 자리를 찾았다.

1960~1970년대 연준과 현재의 연준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지만 대선 후보자들의 연준에 대한 언급은 최근 부쩍 늘었다. 트럼프는 올 2월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이 대선에서 민주당을 돕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려 한다”며 “파월 의장은 정치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파월 의장을 해임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바이든 역시 지난 10일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금리인하가 이뤄질 것이라는 내 전망을 유지한다”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 올해 대통령 선거와 함께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1/3을 새로 뽑는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고물가 고금리 장기화로 고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연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 조기 금리인하를 유도하도록 백악관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 올리면 공화당, 내리면 민주당 당선

과거의 사례와 데이터들이 올해 미 대선에도 들어맞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1980년 이후 대선이 있는 해에 연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면 금리인상 5회, 금리동결 1회, 그리고 금리인하 5회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해 선거에서 연준이 금리를 올린 경우에는 공화당이, 금리를 내린 경우에는 민주당이 대체로 당선됐다.

공화당이 당선된 경우는 1980년(4.00% 인상) 1984년(1.25% 인하) 1988년(1.87% 인상) 2000년(1.00% 인상) 2004년(1.25% 인상) 2016년(0.25% 인상)으로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된 1984년을 제외하면 모두 인상한 경우다. 민주당은 1992년(1.00% 인하) 1996년(0.25% 인하) 2008년(4.00% 인하) 2012년(동결) 2020년(1.50% 인하) 당선됐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2012년 금리동결을 제외하고 모두 인하한 경우다. 파월은 어떤 결정을 할지, 결과는 어떨지 흥미로운 주제다.

안찬수 오피니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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