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재기수사 장고하는 검찰
1심에서 김웅 의원 공모 인정했지만 석달째 결론 못내
판결 50일만 재기수사명령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대비
이른바 ‘고발사주’ 사건으로 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검사장)가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검찰이 손 검사장과 공모한 것으로 의심받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재수사 여부를 결론내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50일 만에 재기수사 명령을 내렸던 것과 대비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검은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 김 의원을 재수사 할 지를 놓고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
고발사주 의혹은 21대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당시 대검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 검사장이 같은 검사 출신인 김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범민주당 인사들의 이름이 담긴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이 사건을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손 검사장을 재판에 넘겼고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31일 손 검사장의 공무상 비밀누설 등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공수처는 손 검사장이 보낸 고발장에 피해자로 적시된 윤석열 대통령과 부산고검 차장검사였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함께 수사했지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김 의원에 대해선 공수처가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기소권이 없어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고발장 파일에 ‘손준성 보냄’이란 표시가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김 의원이 손 검사장으로부터 직접 고발장 등 파일을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검찰은 또 김 의원이 이 사건의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씨에게 고발장 등을 보낸 것은 맞지만 이를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검찰이 김 의원을 무혐의 처분하자 시민단체 사법정의 바로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 2022년 10월 항고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불복해 항고하면 상급기관이 항고이유를 심사해 항고를 기각하거나 재기수사명령을 내리게 된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경우 지난해 11월 29일 1심에서 관련자들이 유죄를 선고받자 서울고검은 50일 만인 지난 1월 18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 대해 재기수사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송철호 전 울산시장,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도 임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고 국민의힘은 이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했었다.
고발사주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세행이 항고한 지 1년 반이 넘고,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진지도 3개월이 지났지만 서울고검은 항고를 기각할지, 재기수사명령을 내릴지 결정하지 않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손 검사장이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고발장의 작성 전달만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법리적 이유에서 손 검사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손 검사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지 않은 만큼 김 의원을 재수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법원이 손 검사장이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한 만큼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임 전 실장이나 조 전 수석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내놓지 않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재판보다 손 검사장과 김 의원의 공모행위를 인정한 고발사주 재판에서 사정 변경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럴 경우 재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김한메 사세행 대표는 “1심에서 김 의원의 공모관계가 인정됐는데도 검찰이 재수사 여부 결정을 미루고 있다”며 “조속한 결론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고검은 김 의원 재기수사 여부 문의에 답을 주지 않았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