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사라진 ‘태양절’, 김정은의 북한 만들기
북한에서 5월 9일은 김정은이 2016년에 당위원장으로 추대된 날이다. 2016년 당시 36년 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당 최고 직책인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되었다. 김정은의 당위원장 추대는 1949년 김일성이 위원장으로 추대된 이후 67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집권 이후 김정은의 권력을 공고화하고 정치적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작업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권력을 공고화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유일한 최고지도자로 위치지우고자 하는 김정은의 의도가 드러났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지칭하는 ‘태양절’이 사라진 것이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등장 당시 할아버지 김일성을 빼닮은 외모로 관심을 끌었고, 이는 안정적인 권력승계를 위한 장치로 해석되었다. 아버지 김정일만큼 후계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는 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젊은 나이에 집권을 하게 된 만큼 권력세습의 정당화와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는 김일성의 후광이 필요했던 것이다.
준비되어온 과거의 태양 지우기
그러나 집권 12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선대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에 태양절이라는 명칭 대신 ‘4·15’ ‘4월 명절’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졌고, 과거에 비해 태양절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단적으로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든 것만을 봐도 알 수 있다. 2012년 1년 동안 11회 방문했던 것이 해마다 줄어 2022년에는 1회, 2023년에는 2회 방문했다. 김일성 생일에 방문하던 것도 작년과 올해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태양의 성지’ ‘주체의 성지’로 불리던 만수대나 금수산태양궁전을 칭할 때 ‘태양의 성지’ 대신 ‘애국의 성지’로 표현되기도 했다. 동시에 공식매체에서 김정은을 ‘주체조선의 태양’이라 칭하며 지금 북한에서 태양은 김정은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태양절’을 지우고 선대와 거리두기를 하는 것일까. 이러한 거리두기는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일까.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무오류의 신격화된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펼쳐온 정책이나 사업 역시 무오류이고 실패란 없으며 대를 이어 지속해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제8기 제9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기존 대남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과 북한의 통일방안이었던 고려연방제를 폐기할 것을 밝혔다. 이는 선대의 과업이자 유훈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없다. 이러한 부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태양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지울 수밖에 없다.
또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로서 정책을 펼쳐가는 데서도 무오류성을 버려야 실패로 인한 부담을 줄일 수 있기에 선대의 태양과는 다른, 주체조선의 태양으로서 자신을 위치지우는 것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충성해야 하고 목숨으로 보위해야 하는 존재로서 수령의 위치는 공고하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작업은 지속되고, 김정은과 사회주의체제를 지키기 위한 통제도 계속된다. 지난 4월 11일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지 12주년을 맞아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지난 1월 김정은 생일에 김정은에 대한 충성선서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달 말 12년 만에 전국 분주소장 회의를 열어 강력한 사회통제가 이루어질 것을 예고했다.
통치전략 변화 따른 명분 만들기
그런 점에서 김정은의 선대 태양 지우기는 과거와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통치 정당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단절이 온전히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대의 통일과업에 대한 부정이 현재 상황에 따른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할 때, 앞으로의 상황에 따른 통치전략 변화에 따라 선대를 다시 강조할 수도, 단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대의 태양은 지우지만 ‘태양’ 그 자체를 버리지 않는 것은 김정은식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사회주의체제 유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통치전략의 변화에 대비해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둔 듯싶다.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 북한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