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더 어렵다는데 재정 조기집행? 문제 없나
3월까지 지출 작년보다 25조 늘려 관리재정수지 75조로 커져
1분기만 예산 41.9% 투입 … 하반기 경기악화되면 ‘실탄부족’
9일 발표한 ‘재정동향 4월호’에서 정부가 뽑은 제목은 ‘1분기 역대최고 신속집행으로 총지출이 전년동기 대비 25.4조원 증가’다.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재정을 빠르게 투입했고, 그 결과 1분기 재정집행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재정 조기집행은 중앙정부 재정사업의 집행(지출)액 상당분을 그해 상반기에 사용하는 제도다. 경기가 어려울 때 정부가 재정을 빨리 풀면 ‘경기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다. 특히 경기 전망이 ‘상저하고(상반기는 나쁘고 하반기는 좋은)’인 상황일 때 유용하다.
문제는 경기전망이 ‘상고하저’일 경우다.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하반기에 쓸 ‘실탄’이 부족해 질 수 있어 부작용이 우려된다. 4.10총선과의 연관성 여부도 묘한 대목이다. 정부의 재정집행이 3월에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이를 놓고 총선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급증 = 기획재정부가 이날 발표한 ‘5월 재정동향’을 보면 3월말 기준 총수입은 147조5000억원, 지출은 212조2000억원이다. 지출이 64조7000억원이 더 많다. 이 때문에 3월까지 통합재정수지는 64조7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사회보장성기금수지 10.6조원 흑자를 뺀 관리재정수지는 75조3000억원이나 적자를 냈다.
수입은 전년 대비 큰 차이가 없는데 지출을 1분기에만 작년보다 25조원 이상 늘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정 조기집행’ 영향이다. 그래서 정부도 ‘사상 최대규모 재정 조기집행’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재정을 1분기에 집중투입해 경기활성화에 한 몫을 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올해는 ‘재정 조기집행’이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건전성에도 나쁜 영향 = 문제는 올해 경기는 거꾸로 상고하저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을 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상반기 2.2%, 하반기 2.0%로 예상했다. 한은 전망대로라면 오히려 경기가 어려운 하반기에 더 많은 재정을 풀어야 한다. 결국 무리한 ‘사상초유 재정조기집행’이 경기활성화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재정당국이 ‘획일적 재정조기집행’에 빠져 실제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 조기집행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재정 조기집행률은 41.9%다. 지난해 1분기(34.1%)보다 7.8%p 더 높았다. 특히 2월말 기준 재정 조기집행률이 24.9%(월평균 12.4%)였다. 3월(17.0%)에 재정 조기집행이 더 집중됐다는 뜻이다. 정 소장은 “정부가 재정 조기집행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총선을 앞둔 3월에 재정 조기집행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건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이라고 했다.
무리한 재정 조기집행이 재정건전성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세수가 덜 걷혔는데 미리 당겨 돈을 쓰려면 국채를 발행하든가 급전을 써야 한다. 실제 올해 정부가 1분기에 한국은행에서 차입한 자금만 32조5000억원이다. 2011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급전이 필요했던 2020년(14조9000억원)보다도 2.2배 많다. 누적 대출이자만 638억원에 달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