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 흔들리고 친윤끼리 싸우고…여권 ‘진짜 위기’
비선이 주장한 ‘윤 대통령 언급’에 보수층 분노 폭발
친윤 이철규-배현진, 통화 녹음까지 공개하며 충돌
“최후 보루인 보수층·친윤까지 흔들리면 진짜 위기”
여권에게 내우(내부 분열)와 외환(총선 참패)이 동시에 닥친 모습이다. 총선 참패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여권에서 보수층·당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친윤 의원끼리 충돌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 여권에서는 총선 참패보다 내부 분열로 인한 후폭풍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진짜 위기는 내부 분열에서 시작된다”는 얘기다.
9일 보수진영은 이른바 ‘비선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담 성사 과정에서 비선(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임혁백 전 민주당 공관위원장)이 가동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실에서는 비선 존재를 부인했지만, 이들 비선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한 윤 대통령의 ‘말’이 보수층과 당원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이 대표에게 불편한 인사를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에서 배제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총리 후보로) 몇 분을 알려주면 미리 검증해 영수회담 테이블에서 결정해 보자”는 대목이 논란이 된 것. 일부 보수층과 당원은 윤 대통령의 언급을 보수진영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서는 윤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하며 탈당을 요구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여권 인사는 8일 “보수층에서는 윤 대통령이 보수를 배신하고 이 대표에게 항복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이 정신 차리도록 혼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찐윤(진짜 친윤석열) 이철규 의원과 친윤 배현진 의원이 공개 충돌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 의원이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불출마를 요구한 사람 중에 오히려 ‘해야 한다’ ‘악역을 맡아 달라’고 요구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자, 일각에서 이 의원이 배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배 의원은 이 의원의 인터뷰 직후 “출마를 반대한 모두에게 난사의 복수전을 꿈꾼 건가”라며 지난달 말 이 의원과 통화한 녹음을 공개했다. 배 의원은 통화에서 이 의원에게 “저는 이번에 (원내대표 경선에) 안 나오시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주류 의원끼리 통화 녹음까지 공개하면서 서로 비난하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석열정부를 2년간 뒷받침해 온 친윤 대오가 총선 참패를 기점으로 심각하게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여권에서는 윤석열정부의 최후 보루로 꼽히는 보수층과 친윤에서 균열 조짐이 나타나자, “진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른 여권 인사는 8일 “상당수 보수층은 윤 대통령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정권탈환을 위해 표를 몰아줬고, 정권성공을 위해 편을 들어줬는데, 국정운영도 제대로 못하는데다 보수를 배신까지 한다면 더이상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느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20%대 지지도마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친윤의 분열 조짐도 심상치 않다. 보수층과 친윤이 (윤 대통령의) 최후 보루가 되어주지 못하면 윤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