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윤 대통령, 정말 변화 의지는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1년 9개월 만에 대국민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여론은 심드렁한 것 같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대도 안했지만 그나마도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언론이나 야당 반응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불가침성역 김 여사를 재확인해준 회견”이라며 “언제까지 고집불통 대통령의 모습에 절망해야 하는가”라고 혹평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1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된 대국민담화와 기자 일문일답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싶어하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담과 기자회견 내내 ‘소통’을 강조하고 ‘경청’과 ‘협치’를 입에 올렸지만 정작 국민과 야당의 핵심요구에 대해서는 완강한 반대입장을 보인 것이다.
다른 사안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회부총리급 역할의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만들겠다는 제안 정도가 새롭다면 새로운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거부하면서 국민과 소통?
현 정국의 가장 핵심고리인 채 상병 특검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진행중인 수사와 사법절차를 지켜보자”고 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찬성하는 특검법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김 여사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사과한다”며 처음으로 ‘사과’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미진하거나 짜고 쳤다고 생각할 때 특검을 하는 것”이라며 단호한 거부입장을 밝혔다. 결국 총선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대통령의 말에는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것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셈이다.
쌍특검뿐만 아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진영간의 갈등을 키우는 정치가 계속되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며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윤 대통령 자신이 ‘이념이 중요하다’며 진영갈등을 부추긴 데 대해서는, 그리고 현정부 들어 민주주의 지표가 더 떨어진 데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었다.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는 양 유체이탈화법을 쓰는 역대 권력형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했다. 그러니 국민이 윤 대통령이 변했다고 믿을까.
지난 2년 주권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거듭 기회를 줬다. 이번 총선에서도 야권에 탄핵에 가까운 의석을 주면서도 선을 넘기지 않은 것은 “이 정도면 좀 바뀌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기대를 외면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 변하겠다고 했고, 취임 후 처음으로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도 했고, 기자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도 늘렸지만 여전히 국민에게 ‘너무 먼 당신’인 것은 ‘신뢰문제’ 때문이다. 신뢰는 “소통하겠다” “나부터 변하겠다”는 말 몇마디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때도 윤 대통령은 거의 매일 빈소를 찾았지만 그가 유족의 아픔에 진짜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은 국민은 거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동안의 ‘권력의 정치’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신뢰회복은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의 궁지를 모면하려고 해서는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소통의 제스처를 취해도 오히려 불신만 더할 뿐이다. 더구나 어제까지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가 오늘 ‘민생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고, 어제까지 카르텔 운운하며 과학기술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가 오늘 사상 최대로 올리겠다는 식의 널뛰기 전력이 있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식이라면 국정동력 회복은커녕 조기레임덕 불가피
윤 대통령과 용산은 1시간 40분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이 궁금해 하는 부분, 오해하는 부분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에 공감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야당의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막 2년을 넘겼지만 지금같은 식이라면 국정동력 회복은커녕 조기레임덕이 불가피해 보인다. 같은 편인 여당으로부터 외면받는 시간도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이 이번 총선에서 ‘정치적 탄핵’을 당했다는 냉혹한 현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주권자들은 진짜 윤 대통령을 버릴 지도 모른다.
대통령도 나라도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더 바뀌어야 한다. 윤 대통령 말마따나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국민이 하나를 기대할 때 열을 내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낮추고 숙이고 다가가지 않으면 ‘윤석열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남봉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