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개악’된 당헌 바로잡아야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충격적 참패를 당한 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이제는 왜 패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넘어 하나둘 패인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윤석열정권 들어 ‘개악’된, 당의 헌법인 당헌을 정상화시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여당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준석 대표 ‘축출’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와 수차례 충돌했던 윤 대통령의 노기가 작용했다는 추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멀쩡한 대표를 내쫓은 여당은 새 대표 선출에 착수하면서 갑자기 당헌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당헌은 대표를 선출할 때 ‘당원투표 70%+여론조사 30%’ 룰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대표를 뽑으면서 당원뿐 아니라 민의도 듣겠다는 취지였다. 만약 당원으로만 대표를 뽑으면 당원 특성상 보수·영남 표심이 판세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지만, 민심 30% 반영을 통해 편향성을 일부라도 교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대선을 앞두고 2021년 6월 실시된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서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결과가 나왔다. ‘30대·0선’인 이준석 대표가 선출된 것이다. 이 대표는 당원투표에서는 2위에 머물렀지만 여론조사에서 압승하면서 쟁쟁한 중진의원들을 꺾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보수정당으로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20·30대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이듬해 대선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여론조사 30%’ 룰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대선 승리로까지 연결된 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장악한 여당은 당헌 개정을 통해 대표 선출 룰을 ‘당원 100%’로 바꿨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윤 대통령이 낙점한 김기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윤 대통령이 싫어하는 당권후보들이 민심의 지지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원 100%’ 룰 덕분에 국민에게는 낯선 김 대표가 선출될 수 있었다. 당시 유력 당권주자로 꼽혔던 나경원 당선인은 최근 “(지지율) 5%로 출발한 김기현 대표를 (대표로) 당선시키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게 많이 연출되지 않았나. (‘당원 100%’ 룰은) 저를 떨어뜨리려고 한 룰”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정권 들어 ‘개악’된 당헌을 정상화시키는 게 황우여 비대위의 제1과제다. ‘윤심’이 대표를 낙점하면서 대통령 눈치만 보게 된 여당은 2년 동안 민심과 괴리된 길을 걸었다. 총선 참패는 그 괴리에서 비롯됐다.
친윤과 일부 당권주자는 아직도 ‘친윤 당권’을 꿈꾸거나 ‘윤심’의 낙점을 바라면서 ‘당원 100%’ 룰을 고집하고 있다. 총선 참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행태다. 여당의 쇄신은 ‘윤심’이 개악한 당헌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된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