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 드러난 검찰 인사, 추가 갈등 예고

2024-05-17 13:00:27 게재

박성재 장관, 이원석 총장과 인사 시기 갈등 인정

후속 인사·김건희 여사 수사 놓고 충돌 가능성

‘총장 패싱’ 논란을 부른 검찰 고위 간부 인사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논란의 당사자들이 원칙론을 강조하면서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검찰 후속 인사와 주요 사건 수사에서 또다시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이번 검사장 인사에 대해 “검찰총장과는 협의를 다 했다”면서도 “시기를 언제 해달라는 부분이 있었다면 그 내용을 다 받아들여야만 인사를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인사가 단행된 16일 출근길에서 ‘총장이 인사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는데 협의가 제대로 안된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서다.

박 장관이 검사장 인사 시기를 놓고 이원석 검찰총장과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13일 대검검사급 검사 39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이 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신속·엄정 수사 지시를 내린 지 10여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인사에서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과 김창진 1차장, 고형곤 4차장 등 김 여사 의혹 수사 지휘부가 전면 교체돼 이 총장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이 안된 채 대통령실과 법무부 주도로 인사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실제 이 총장은 지난 14일 출근길에서 사전 조율을 묻는 질문에 한동안 침묵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이 총장은 16일 신임 검사장 오찬에서도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고통의 바다에 뛰어들게 되며,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라며 “매순간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 사이에서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워내는 뜻깊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니 자긍심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임 검사장에 대한 당부였지만 자신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암시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다만 이 총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을 표현하진 않았다.

하지만 인사를 둘러싼 박 장관과 이 총장의 이견이 확인된 만큼 조만간 이뤄질 검찰 후속 인사에서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장관은 “중앙지검 1~4차장이 동시에 비어있기 때문에 후속 인사는 최대한 빨리 해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할 생각”이라며 신속한 후속인사를 예고했다. 법무부는 이미 부부장급 이상 검사들에게 근무 희망지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상태다.

후속인사에서 관심사는 서울중앙지검 1~4차장 인선과 김 여사 수사를 담당하는 부장급 검사의 교체 여부다. 지휘부에 이어 김 여사 수사를 담당하는 실무진까지 대거 물갈이된다면 이 총장의 의지에 반하는 인사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이날 ‘김 여사 수사를 고려한 인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번 인사로 그 수사가 끝났느냐”며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여사 수사를 새로 이끌게 된 이창수 신임 중앙지검장도 김 여사 수사와 관련해 “인사와 관계 없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수사에 지장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틀 전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고 했던 이 총장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미묘한 차이가 읽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검장은 취임사에서 “검찰이 해야만 하는 일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증거와 법리를 기초로 사안의 실체와 경중에 맞게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열심히 수사해서 죄가 있으면 있다 하고, 죄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된다”고도 했다.

김 여사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했던 이 총장의 주문과는 분명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김 여사 관련 의혹 등 향후 수사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전직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법무장관의 발언은 이번 인사에서 검찰총장과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매주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게 주요 사건 수사과정에 대해 주례보고를 할텐데 앞으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많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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