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내부서 라이시 사망설 흘러나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유력 후계자 … “정통성 위기에 이스라엘·미와 긴장, 큰 시련”
이란 당국은 60개 팀이 넘는 구조대를 파견하고 군경 및 혁명수비대(IRGC)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수색 중 날이 저문 데다 사고 지역 산세가 험하고 눈보라와 짙은 안개 등 악조건이 겹쳐 헬기 추락 지점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란 국영 IRNA 통신이 전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20일 새벽 이란군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수색 작업이 반경 2㎞까지 좁혀졌다고 보도한 가운데, IRNA 통신은 모흐센 만수리 행정 담당 부통령이 추락 헬기에 탑승했던 대통령 측근 두명이 구조대에 연락을 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라이시 대통령이 사망설도 흘러나온 상황이다. 미 시사주간지 디 애틀란틱(The Atlantic)은 이날 이란 대통령실과 가까운 테헤란 소식통이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란 당국이 혼란을 부르지 않고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냐톨라 알리 하메네이(85)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온데다가 이번 헬기 추락 사고가 이란이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망이 사실일 경우 이란이 겪을 혼란이 상당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분석가 알리 바에즈는 뉴욕타임스(NYT)에 “대통령이 사망하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5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면서 “이는 국내적으로 심각한 정통성 위기를 겪고 있고 이스라엘, 미국과 ‘단검을 겨누고’ 있는 국가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라이시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지난 2년간 이란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 화폐 가치의 사상 최저치 폭락,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1979년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래 가장 치명적인 테러 공격 등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의회 선거에서 수백만명의 이란인들이 투표를 거부하고 극우세력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면서 이란 집권층의 정통성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바에즈는 이에 대해 “현재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이란 국내에서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며 “국가와 사회 간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에 이란이 깊숙이 개입하면서 이스라엘과 직접 공격을 주고받아 전면전 우려 등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이란은 하마스 뿐 아니라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민병대 등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하마스 연대를 선언한 무장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라이시 대통령의 유고가 확인될 경우 이란 헌법에 따라 모하마드 모크베르 제1부통령이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받으면 대통령 권한을 승계하게 된다고 전했다. 모크베르 부통령은 69세로 12명의 부통령 중 가장 연장자다.
1989년 통과된 이란 헌법 131조는 대통령 유고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지도자(제1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로 구성된 위원회가 5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특별 선거를 준비하도록 하고 있다. 모크베르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지난 2007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금융 제국 세타드의 최고 경영자로 임명했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다. 미 재무부는 2021년 조직적 부패를 이유로 그를 제재 명단에 올렸지만, 6개월 뒤 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란의 정치체제는 대통령, 입법부, 사법부가 있지만 최고의 권위와 권한을 지난 국가 원수는 최고 지도자다. 대통령은 일상적인 통치를 영위하지만 가장 강력한 재정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권력을 지닌 최고 지도자에게 종속돼 있다. 최고 지도자는 사회적,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고 군대를 지휘하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준정부 금융 기관인 세타드를 통제한다.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무력화될 경우 제1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도록 승인하는 등 승계 계획을 선택하는 이도 최고 지도자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