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불법 자전거래’ 내일 금감원 제재심…중징계 예고
당국 “고질적 병폐 뿌리 뽑겠다” 엄단 의지
9개 증권사, 일부 CEO 제재대상 포함될 듯
고객 계좌의 손실을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다른 고객 계좌로 전가하는 등의 위법행위가 드러난 증권사 9곳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논의가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은 2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우선 KB증권과 하나증권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제재 대상은 증권사에 대한 기관 제재를 비롯해 채권형 랩·신탁 업무 관련 임원과 담당자 등이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CEO)를 제재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일부 증권사는 최고경영자도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위법 행위가 벌어질 당시 관련 업무를 담당한 경우 감독자로서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사전 통지를 통해 증권사에 대해서는 일부 영업정지, 감독자와 행위자에 대해서는 직무정지와 감봉 등 중징계를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재 양정을 확인해주기는 어렵지만 증권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이번에 뿌리 뽑겠다”며 엄단 의지를 밝혔다. 지난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으로 채권형 랩·신탁 가입 고객의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할 당시 일부 증권사들이 고객의 투자 손실을 보전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관련 검사에 착수해 일부 증권사가 법인 거액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제시했고, 수익률 달성을 위해 다른 증권사와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전가한 사실을 확인했다. 연계·교체거래는 자본시장법상 자전거래 규제 등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증권사와 종목이 서로 다른 채권, 기업어음(CP) 등을 주고받는 거래방식을 말한다.
일부 증권사는 2022년 7월 다른 증권사와 6000여회의 연계·교체 거래를 통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사들이 오랜 관행처럼 이어오던 이 같은 위법행위가 불거진 것은 만기불일치(미스매칭)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부 증권사는 수익률 달성을 위해 만기가 장기(1~3년 이상) 이거나 유동성이 매우 낮은 CP 등을 편입해 상품을 설계·판매했고, 계약 만기 시점에는 운용 중인 다른 계좌에 장부가로 매각하는 하는 방법으로 환매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위기가 확대되자, 더 이상 연계·교체거래 등의 방식으로 수익률을 보장해줄 수 없게 됐다. 일부 증권사는 고유자산을 활용해 고객의 랩·신탁에 편입된 CP 등을 고가로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환매대금을 마련해 지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