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망 충격, 테헤란 대규모 추모객
이란 “22일 장례식, 대통령 보궐선거는 내달 28일” … 일부선 정부 불신·냉소도
현지매체인 반관영 타스님 통신과 AP·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앞으로 5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모흐리 만수리 이란 행정담당 부통령은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식이 오는 22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하메네이 지도자는 헌법에 따라 모하마드 모 트베르 수석 부통령을 대통령 직무 대행으로 지명했고, 이란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6월 28일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른다고 발표했다. 대선 후보자 등록은 이달 28일 마감된다.
라이시 대통령이 실종 하루 만에 결국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자 이란은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외신에 따르면, 수도 테헤란 곳곳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문 가판대에서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타전하는 호외를 사 들고 망연자실해 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에스마일 미르바히비는 라이시 대통령에 대해 “나라 전체에서 인기가 높았던 인물인 그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빈자리가 클 것 같다”고 애도했다.
이란 현지 언론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 주요 도시 곳곳에서 추모 기도회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시아파 도시인 쿰의 자원보사 민병대원인 모하마드 호세인 자라비는 “그는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었다”며 “그의 유산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 중심가인 발리아스르 광장에는 오후 들어 추도객들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반관영 메흐르 통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로 구석구석이 인파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검은색 깃발 주변에 모여 이슬람 경전 쿠란 낭송을 경청했다. 검은색 차도르를 뒤집어쓴 채 흐느끼는 여성들도 다수였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광장으로 향하던 노인 샤히드 라제이는 “사고 소식을 듣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라이시 대통령을 잃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22년 시작된 히잡 시위의 유혈진압과 장기간 지속된 경제난과 민생고로 커져 온 강경 보수파 정부에 대한 불만도 감지됐다.
테헤란의 21세 학생 라일라는 로이터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라이시가 히잡을 쓴 여성에 대한 단속을 지시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면서 “라이시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슬프다”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라이시의 불확실한 생사여부가 사망일 것이란 추측이 번지면서 현 강경파 정부 지지층과 반대층의 반응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정권 반대자들은 라이시의 죽음을 “좋은 일”이라며 축하하기도 했고, 페르시아 소셜 미디어에는 2년 전 살해되거나 불구가 된 시위대의 사진뿐 아니라 비꼬는 댓글이 많이 올라왔다고 방송은 전했다.
로이터는 이란 내부의 이런 분위기에 대해 2020년 이라크에서 미국 미사일에 맞아 사망한 카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장례식 때 수많은 추모 인파가 몰려 슬픔과 분노로 울부짖었던 사례를 거론하며 “대중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죽음에 뒤따르는 감정적 수사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BBC는 “이란인들 중에는 뉴스에 대체로 무관심한 ‘회색지대’도 존재한다”면서 “많은 이란인들은 최고 지도자가 궁극적인 권력을 쥐고 있고 반대파를 처리하는 보안군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죽음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나”고 전했다. 다수 이란인들이 라이시의 사망이 이란 통치방식에 거의 주지 않을 것이며, 비슷한 강경한 견해를 지닌 다른 인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중부 사막 도시 야즈드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레자는 로이터에 “먹고사는 문제로 너무 바빠서 그런 소식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한 강경파가 죽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으면 우리의 불행은 계속 되겠지”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