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공공기관 이전과 대통령의 미묘한 발언
총선이 끝난 지 한달이 지났다.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정부에겐 커다란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윤석열정부는 집권 초 호기롭게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장담했다. 정권 초 해치우겠다는 결의도 보였다. 5년 간 변죽만 울리다가 끝난 문재인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하지만 총선이 가까이오자 입장을 바꿨다. 총선 이후에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선거 국면에서 민감한 문제를 뒤로 돌리는 것은 어찌 보면 선거공학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공공기관 이전 관련 입장은 미묘했다. 윤 대통령은 “지역특성 등에 맞게 맞춤형 이전을 추진하겠다”며 “지역과 협의해 빠른 시일 안에 계획을 짜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밝혀온 정부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작 비수도권에서 주목한 발언은 다른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 발언에 앞서 “각 지역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사족을 달았다.
앞의 발언이 향후 계획이라면 뒤의 발언은 평가다. 종합하면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그리 도움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엔 잘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론 ‘도움이 되지 않았다’에 무게가 실린 얘기일 수도 있다. 이 발언 이후 비수도권은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다시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어느 정도가 ‘크게’라는 단어에 적합할까. 대전시는 최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시 내부 이전을 놓고 온통 시끄럽다. 밖에서 보면 같은 대전시 안에서, 그것도 원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그리 클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소상공인 등 당사자들은 사활을 건다. 공공기관 하나에 이렇게 목숨을 거는 게 비수도권 현실이다.
이 같은 반응은 대통령의 평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과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다. 그동안 수없이 확인했다. 공공기관 이전은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기회발전특구의 전제조건이다. 공공기관도 내려가지 않는 곳에 민간기업에게 돈 몇푼 쥐어주고 내려가라고 하면 수긍하겠는가.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강조해왔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다음 큰 선거는 2026년 6월 지방선거다.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약속대로 숙제는 해야 한다.
윤여운 자치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