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중러, 동맹인가 동상이몽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6일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통령 5선 연임과 주석 3선 연임에 성공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번이 43번째로, 지난해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답방이자 중러 수교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성격이다. 정상회담을 마친 이들은 미국 및 동맹국들의 대북제재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앞으로 중러 간 군사협력 강화하겠다는 강도 높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 양자 간 무역액이 2400억달러를 넘어 전년 대비 26% 이상 증가했고, 이번 방문 일정에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 경제 관료와 기업인들이 대규모 사절단을 꾸려 동행한 점에 비추어 보면 현재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두 나라의 협력관계는 완전한 의미의 동맹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이점을 들어 중러 간 파트너십이 이제 ‘정략결혼’의 수준을 뛰어넘어 서로 필수불가결한 관계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러 간 필수불가결한 관계로 발전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무기 등 군수물자 규모는 2022년에 전년 대비 120%, 2023년에 그로부터 다시 170%로 급격히 늘어났다. 두 나라 간 상호 무역의존 현상은 군수산업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 수입품 중 중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우크라이나전쟁 중 30% 미만에서 2022년에는 60%, 2023년에는 88%나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3년째 경제봉쇄를 당하고 있는 러시아와 최근 미국으로부터 전기자동차에 대한 100% 관세 부과 통보까지 받은 중국으로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반미동맹의 파트너이자 동병상련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의 관계는 영속적인 동맹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반대의견도 있다. 두 나라의 관계가 극도로 친밀해진 것은 우연히도 근자에 미국이라는 공적(公敵)을 두었기 때문일 뿐 근본적으로 동맹 수준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기관인 제임스타운 재단의 러시아 국방 분석가 파벨 루진은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이 푸틴정권의 약점이라 지적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중국에 굴종하는 관계로 전락했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심지어 러시아는 1858년 아이훈 조약을 통해 구 러시아 제국이 청나라로부터 빼앗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지난해 5월 중국에 내어주는 굴욕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푸틴은 중국과 러시아 간 깊은 신뢰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지정학적 요충지를 인접국가에 내어주는 우를 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러시아가 영토분쟁을 유발할 빌미를 중국에 제공한 것이기도 해 앞으로 두 나라 간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도 높다.
영속적인 동맹 관계 발전 어려울 수도
중국은 세계 경제 블록화로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 대한 수출길이 막혀 고립무원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비슷한 처지의 러시아와 교역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그동안 판로를 개척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가 밀접해질수록 러시아와 거래를 하는 중국 은행이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되레 최근에는 러시아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러시아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중국의 만남은 분명 미국의 아성을 위협하는 호적수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패권자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약화된다면,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난다면, 중러 내부 정치적 환경이 바뀌어 두 나라 중 어느 나라라도 세계 주류적 경제질서에 재편입하게 된다면 이들이 지금처럼 손을 맞잡을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두 나라는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지만 서로 다른 원대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