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 치열하게 듣는 대화가 필요하다
여기 컵이 하나 있다. 이 컵에 손잡이가 생기면 관계가 생긴다. 손잡이는 타자를 향해 손을 뻗는 행위가 된다. 관계에 대한 이 탁월한 비유는 고 이어령 선생의 말씀이었다. 선생은 우리가 소통하기 위해서 이렇게 밖으로 뻗은 손잡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머그컵의 손잡이에서 사람의 귀를 떠올렸다. 소통하기 위해 뻗은 손잡이, 그것이 바로 치열하게 듣는 대화 ‘경청’이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이해관계 충돌
구청장은 구민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특히 행정문화복합타운(G-plex) 조성을 비롯해 영동대로 복합개발, 수서역 환승센터 복합개발, 노후주택 재건축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금 강남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론의 장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잘 들어야 한다. 소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태도는 갈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치열하게 말하는 대화가 아닌, 치열하게 듣는 대화가 필요하다.
올해 초 구정보고회를 통해 22개 동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 올해의 주요 사업을 설명하고 건의 사항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가장 첨예한 갈등은 모아타운 문제를 둘러싼 집단민원이었다. 노후한 저층 주거지를 개선하는 서울시 모아타운 사업은 소유자 30% 이상이 동의하면 공모 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정보고회에서 찬반의견이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집단민원의 이면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법적인 제약이 걸려 있었다. 주민들은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답답해하지만 이들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상대방의 태도였다.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만 옳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제대로 들어야 한다.
필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보니 현행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지 지분이 적은 다세대주택 소유자와 지분이 많은 단독주택 및 상가 소유자의 입장은 달랐다. 각자가 소유한 땅의 면적이 다 다른데, 그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동의율만 보니 당연히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제도개선으로 갈등과 행정력 낭비 예방
현 제도가 갈등의 불을 지폈다면 제도개선이 필요했다. 이에 구는 자체적으로 모아타운 공모 신청에 토지면적을 추가하기로 했다. 토지면적의 40% 이상의 소유자가 동의해야 공모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강남구가 제도를 마련한 뒤 모아타운 사업의 갈등과 투기를 막기 위해 시에서도 자치구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아울러 제도개선 과정에서 동의율을 50%로 높였다. 실제로 사업이 추진되려면 조합설립까지 가야 하는데 조합설립 동의율은 80%라는 점에서 30%는 비현실적인 수치였다. 적어도 과반수 이상이 동의해야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고 불필요한 갈등과 행정력 낭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고 변죽만 울리는 대화는 당장에는 편할 수 있다. 반대로 제대로 들었기에 문제의 근본을 흔드는 대화는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먼저 정확히 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 치열하게 듣는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조성명 강남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