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놓치면 공룡플랫폼 독과점 폐해 못막는다
<22대 국회 핵심법안 플랫폼법 ① 왜 지금 플랫폼법인가>
플랫폼업계는 ‘혁신저해’ 명분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시장 장악하면 언제든 ‘괴물’로 변질될 가능성 있어
현재론 사건처리에 최소 1년 … 사전지정제도 배경
변화 속도 빠른 플랫폼 … 늑장 제재는 실효성 없어
내달 개원할 22대 국회의 핵심법안으로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업계와 정치권 일각의 반발로 ‘보류’를 선언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 재시동을 걸면서부터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찌감치 ‘국회가 처리해야 할 핵심법안’으로 올려둔 상태다. 여야 모두 ‘국회통과 대상법안’으로 점찍은 만큼 22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변수도 있다. 정부나 야당 모두 ‘플랫폼법 제정’에 공감하고 있지만 결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준비하는 법안은 대형플랫폼의 다른 플랫폼에 대한 독과점 횡포를 막는 내용이 중심이다. 반면 야당은 여기에 입점업체에 대한 횡포도 함께 규제하는 법안에 힘을 싣고 있다.
더 큰 변수는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시장의 최강자로 성장한 대형플랫폼의 ‘조직적 반발’이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부터 막강한 ‘재력’을 기반으로 플랫폼 전문가와 언론, 관련 협회 등의 ‘법제정 반대’ 여론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위가 지난 2월 ‘플랫폼 제정 보류’를 선언한 것도 이런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1년6개월째 논란 중인 플랫폼법 = 우리나라는 플랫폼법 제정을 두고 1년6개월 넘게 입씨름만 벌이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플랫폼 관련 규제 입법을 추진 중이거나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 시장법(DMA)이 시행됐다. 한국이 올해 중 플랫폼법을 제정하더라도 이미 늦은 셈이다.
공정위가 플랫폼법 제정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해 12월19일이다. 당시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플랫폼법 추진을 선언했다.
소수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하고 자사우대와 끼워팔기, 멀티호밍 등 4대 반칙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플랫폼법의 골자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에서의 반칙행위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 효과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플랫폼 시장에서 독과점 플랫폼들의 반칙행위를 차단해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스타트업 등 플랫폼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 및 활동이 보다 활성화되어 플랫폼 산업의 혁신과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총선 뒤로 미뤄진 ‘플랫폼전쟁’ = 플랫폼업계는 강력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플랫폼법이 통과될 경우 국내 플랫폼에 대한 역차별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플랫폼법이 한국 플랫폼만 규제하고 외국 플랫폼에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플랫폼업계는 “국내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해외 플랫폼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경쟁 상태”라며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정위는 지난 2월7일 한발 물러났다. 법안 제정에 대해 전문가·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설명과 함께 법안의 핵심이던 ‘지배적 사업자 사전지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총선 여론에 대한 여당의 우려도 ‘입법 추진 연기’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공정위의 ‘보류선언’ 이틀 전 공정위는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플랫폼 경촉법의 주요 내용을 협의했다. 관계부처 조율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공정위가 법안 발의를 위해 국회를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여당이 부정적 입장을 내놓으면서 플랫폼법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관련업계의 반발이 거센 만큼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부담스럽다는 취지다.
◆급부상한 플랫폼 제정논란 = 미국 내에서 플랫폼법 반대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을 키웠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당시 성명을 내고 “플랫폼 경촉법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쟁을 짓밟고, 선량한 규제 관행을 무시하며 외국 기업을 임의로 표적으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이후 총선 정국에 들어서며 플랫폼법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플랫폼법 제정 논란은 총선 한달여가 지난 16일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법안 재추진 의사를 밝히며 급부상했다. 한 위원장은 “이해관계자와 학계의 의견을 듣고 해외 사례를 참고해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면서 “이달 말 새로 출범하는 국회에도 법안의 필요성과 내용을 잘 설명해 입법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플랫폼업계 등 이해관계자나 국회와의 협의 등 절차를 고려하면 늦어도 올해 중에는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논란 중인 사전지정제가 플랫폼법의 핵심 =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는 변화속도가 빠른 대형플랫폼의 독과점 폐해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 공정위 입장이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현행 공정거래법 집행 체제로 플랫폼 기업의 반칙 행위를 제재하면, 심의를 마치고 시정조치할 즈음에는 시장이 이미 독과점화가 돼서 경쟁질서 회복이 늦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대형플랫폼의 독과점 행위를 파악해서 제재절차를 마치려면 최소한 1년,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2~3년은 걸린다. 매 사건마다 관련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지는 사업자인지를 구분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공정위 전원회의나 법원도 매번 이런 판단을 반복해야하기 때문이다. 업계 특성상 2~3년 뒤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것이란 진단이다.
실제 토종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으로 출발한 ‘원스토어’에 대해 과거 구글은 노골적으로 사업을 방해한 일이 있었다. 원스토어에 입점해 앱을 파는 개발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 구글 앱스토어에서만 팔도록 유도한 것이다. 플랫폼법에서 금지할 예정인 이른바 ‘멀티호밍’ 행위다.
2018년 4월 관련 조사에 착수했던 공정위는 5년이 지난 지난해 4월에야 구글에 과징금 421억원을 부과했다. 문제는 해당 제재가 이뤄지기까지의 기간 동안 원스토어의 시장 점유율은 19%에서 9%로 급감했고, 구글 앱스토어는 90%의 독점 사업자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원상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육 처장은 “플랫폼 시장의 특성상, 독점화 속도는 빠른데 해당 시장을 조사하는 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며 “한번 무너진 시장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독점화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수수료를 높이는 등 결국 소비자 피해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플랫폼법에 담긴 내용이 ‘사전지정제’다. 사전에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미리 지정해 두고, 반칙 행위가 발생하면 경쟁 제한성 판단으로 바로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애플과 구글, 네이버, 카카오, 넷플릭스 등 5~7개 업체 정도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