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고령화 청년층 진입

청년층, 건설기능인 기피 이유 ‘불투명한 직업전망’

2024-05-24 13:00:36 게재

비정규직에 대한 실험으로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 도입, 하지만 참여 저조 … 미흡한 활용방안 마련 시급

건설현장 기능인으로 청년층이 들어오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그들의 정신상태를 탓하기 보다는 어른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청년들은 정보접근 능력이 뛰어나고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내다보고 직업을 선택한다. 청년들에게 건설산업은 노력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 돼 버린 것이다. 현재도 어렵지만 직업전망 역시 불투명하니 당연한 결과다.

만일 땀을 흘리고 열심히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경력을 쌓게 되면 장차 관리자 사업자 교육자 등이 되어 ‘존경받는 건설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똑똑한 청년층이 오지 않을 리 없다. 독일에서 건설현장의 마이스터를 롤모델 삼아 청년층이 들어오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명품 아파트를 바라면서 직접생산자를 ‘노가다’라 무시한다. 어찌 ‘노가다’로부터 명품이 나올까. 끊이지 않는 부실시공도 이와 무관치 않다.

건설산업에서 숙련인력의 육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명품 아파트를 원한다면 먼저 명품 기능인을 육성해야 한다. 더 이상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 수년 전 건설 관련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앞줄에 있던 학생이 질문을 했다. “자격증을 따고 건설현장에 나가면 얼마나 벌 수 있나요? 그리고 정규직을 할 수 있을까요?”

#. 이 학교 선생님이 말했다. “혹자는 학생들의 정신자세가 해이해져 힘든 일을 기피한다고 하는데, 이는 모르고 하는 얘기죠. 학생들은 영리하고 사리분별이 정확합니다. 청년층이 안오는 이유는 우리 어른들이 힘든 일에 대한 직업전망을 주지 못해서입니다.”

건설현장의 근로자와 사업주 역시 청년층이 건설기능인을 기피하는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불투명한 직업전망’이라고 응답한다. 건설 관련 특성화고 학생들의 응답도 유사하다.

Z세대가 툴벨트세대가 되는 법 | 월스리트저널은 4월 1일자 ‘Z세대가 툴벨트세대가 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술직 노동자의 아들인 테너 버지스(20)는 용접공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설명과 함께 사진을 실었다. Z세대는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출생자. 툴벨트(Toolbelt)는 각종 공구를 매달 수 있는 허리띠. 사진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캡쳐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그리고 스마트건설을 언급하면서, 기능인이 필요 없어진다거나 반으로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은 현실을 오도한다.

최근 미국 Z세대 중 대학에 가는 대신 건설현장의 기능직으로 취업하는 청년층이 많이 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AI시대의 직업안정성도 기능직이 더 높다고 보도했다.

직업전망이란 경력이 쌓이면 이르게 되는 직위와 받게 될 소득을 말한다. 젊었을 땐 육체노동을 하더라도 나중엔 관리자가 될 가능성도 포함한다. 건설기능인이라는 직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는 뭘까? 요컨대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지’를 입증하기 어려웠고 ‘관련 제도에서도 배제’됐기 때문이다.

경력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인 건설기능인은 1998년 퇴직공제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자신의 경력은커녕 신분조차 입증하지 못했다. 고용노동제도가 ‘기업단위’로 설계돼 사업주의 관심 밖에 놓인 기능인의 근로경력은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임에도 퇴직금 받고 경력입증도 가능 = 이들의 직종과 근로경력에 대한 입증은 ‘초기업단위’로 설계된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의 도입으로 비로소 가능해졌다. 통상의 퇴직금은 동일 사업장에서 1년 넘게 근속해야 받을 수 있는다.

하지만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는 적용대상인 모든 현장에서 1년 미만 일해도 근로일수에 상응하는 공제부금을 적립했다가 퇴직할 때 퇴직공제금을 지급한다. 이것이 ‘잦은 이동’이라는 특성을 반영한 최초의 비정규직 맞춤형 복지제도다.

부산물인 퇴직공제DB를 활용해 ‘어떤 일(직종)을 얼마나 했는지(경력)’를 입증함으로써 비정규직에게도 ‘직업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비정규직에게도 직업전망을 줄 수 있다는 실험으로서 신기원을 개척한 것이다.

2012년의 기능등급제에 대한 최초 연구 이후 부진하다가 2018년부터 다양한 전문가와 유관기관이 참여한 3년여 동안의 테스크포스(TF)와 1년여의 연구를 거쳐 제도를 설계했다.

먼저 기능수준을 등급화하고 그에 상응하는 고용 및 임금 측면의 우대조치를 규정하고자 했다. 적절한 지위와 보상이라는 직업전망을 통해 젊은층의 진입과 육성을 촉진하고자 했다. 또한 기능인의 시공 경험과 숙련을 오롯이 생산과정으로 되돌려 품질과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숙련인력 기반과 건설산업 발전의 지속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독일 건설훈련센터에서 직업학교 학생들이 마이스터의 지휘 아래 지붕공사 실기를 익히고 있다. 심규범 대표가 2015년 11월 독일 출장 중 직접 촬영한 사진.

●불씨 꺼지기 전에 활용방안 법제화 서둘러야 = 오랜 염원을 담아 2021년 5월 27일에 ‘기능등급제’가 시행됐으나 ‘쓸모’ 규정이 없는 ‘반쪽짜리’ 제도였다. 일부의 우려가 있어 활용 및 우대방안의 법제화를 시범사업 이후로 미뤘다.

경기도의 협조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평가 과정에서 만난 현장의 기능인들은 한편으론 “고령화가 심각한데 왜 이제야 왔느냐”고 꾸중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제라도 다행”이라며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등급보유자에 대한 활용방안의 법제화가 매우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도 ‘쓸모’에 대한 법제화는 이뤄지지 못해 직업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활용방안 마련이 지체되자 우려됐던 건설근로자 참여도 저하가 현실화하고 있다. 좀 더 늦어진다면 자칫 직업전망의 불씨가 꺼져버릴 수도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등급보유자에 대한 활용방안을 규정’해 직업전망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야 청년층의 진입과 숙련형성도 촉진할 수 있다. 건설기능인들은 주요 활용방안으로서 △건설업체의 시공능력평가요소에 반영 △전문건설공사 현장대리인 배치기준과 건설업체 설립요건에 선택적 반영 △핵심 기능인을 필수인력으로서 보유 △향후 등급에 상응하는 임금 차등화 등을 꼽는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전 건설근로자공제회 센터장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