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2기 공수처 과제
수사기관으로서 존재이유 입증해야
인력·수사범위 확대 등 제도개선 시급
“선택과 집중으로 성과 내는 것이 우선”
“공수처는 수사기관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새 수장으로 임명된 오동운 신임 처장은 지난 22일 취임식에서 공수처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같이 말했다. 공수처가 수사기관이라는 뻔한 사실을 오 처장이 강조한 것은 출범한 지 3년이 넘도록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공수처의 현실을 방증한다.
오 처장이 밝힌 대로 공수처는 독립된 반부패 수사기관으로 권력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확립하고 반부패 수사역량을 강화해 청렴한 공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설립됐으나 그동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적은 인원에 신분도 불안, 초라한 성적으로 이어져 = 공수처가 2021년 1월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직접 수사해 기소한 건은 3건. 이 가운데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의혹 사건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전직 부산지검 검사 수사기록 위조 의혹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올해 1월 ‘고발사주’ 의혹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서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공수처가 그동안 청구한 구속영장은 총 5건이었는데 모두 법원에서 기각돼 ‘5전 5패’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오 신임 처장의 제1 과제로 수사력 강화가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수처의 수사력이 약한 원인으로는 우선 부족한 인력문제가 거론된다. 한국정책능력진흥원이 지난 2022년 내놓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직역량강화 방안 마련 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공수처의 적정 인원은 검사 40명, 수사관 80명, 행정인력 50명 등 총원 170명 규모로 제시됐다. 이 정도 규모는 돼야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공수처 설립이 추진되던 문재인정부 당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사 50명, 수사관 70명을 적정 인원으로 권고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전체 수사인력 규모가 파견검사까지 합쳐 120여명에 달했던 것을 고려한 숫자였다.
하지만 검사들로 구성된 법무부 태스크포스(TF)와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공수처 정원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행정인력도 20명에 불과하다. 검찰의 견제와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반대 등을 고려한 탓에 규모가 쪼그라든 것이다.
워낙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공수처 검사들은 수사에 집중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공수처에 근무했던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이 없다보니 수사한 뒤 공판에도 참여해야 했다”며 “검사 때는 공판에 나가도 부담이 없었는데 공수처는 빨리빨리 사건을 처리해야 해 한 사건에 매달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행정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수사관들이 소속 부서의 총무와 행정업무까지 직접 처리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수처 직원들의 신분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3년마다 재신임을 받아야 하고 연장은 3번까지만 가능하다. 정년 보장없이 최장 12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 정년이 보장되고 7년마다 적격심사를 받는 검찰과 대비된다.
격무에 시달리는데 신분은 불안정하다보니 공수처에서는 인력 이탈이 이어져왔다. 공수처 출범 후 3년간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자진 사의로 퇴직한 검사와 수사관은 전체의 절반 가량인 30여명에 달한다. 이렇게 인력이 이탈하면 업무는 더 가중되고 다시 사람을 뽑아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돼왔다.
◆제한된 수사범위, 수사·기소 불일치도 문제 = 공수처의 부족한 수사력이 수사 인력 문제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상 공수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3급 이상 고위공무원 등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는데 수사 대상 범죄는 직무유기, 횡령·배임 등 직무 관련 범죄로 국한된다. 고위공직자 비리 대부분 민간 비리와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띤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대로 수사하기 어려운 구조다.
검찰과 경찰의 고위공직자 뇌물 범죄 수사를 보면 기업의 배임·횡령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에게 전달된 뇌물이 밝혀지는 식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민간 기업의 범죄는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검·경과는 달리 거꾸로 ‘윗선’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한다. 그만큼 혐의를 인지하기도 어렵고 수사 대상이 아닌 민간 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인 수사를 펼치기도 힘들다.
실제 공수처 ‘1호 인지사건’인 서울경찰청 김 모 경무관 뇌물 의혹 사건의 경우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대우산업개발 회장과 직원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 문제도 공수처의 수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가운데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만 재판에 넘길 수 있다. 기소 대상이 아닌 고위공직자는 수사를 해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이첩할 수 있을 뿐이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혐의를 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이 여러 차례 공수처의 소환 요구를 불응했던 것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 수사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권한과 규모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문재인정부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지냈던 김남준 변호사는 지난 1월 국회 토론회에서 “현재 공수처법은 공수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권한, 규모와 조직, 인적 구성을 갖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며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의 모든 범죄에 대해 공수처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수사할 수 있는 모든 대상 사건에 대해 기소권을 갖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검사와 수사관 규모도 개혁위가 제시했던 규모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오 처장 역시 취임식에서 “구성원들이 수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수사 대상 확대와 증원 등은 법개정과 맞물려 있어 공수처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임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도 국회에 여러 차례 인력 증원을 요청했고,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21대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못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에 참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공수처 출범 초기만 해도 인력 확대 등을 위한 법개정 움직임이 있었다”며 “하지만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공수처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멀어져갔다”고 말했다.
◆“공수처 없었다면 고발사주 수사 가능했겠나” =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사 성과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적 관심이 있는 의혹에 집중해 성과를 내다보면 공수처 기능과 역할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란 얘기다.
고발사주 의혹 사건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고발사주 의혹은 21대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준성 검사장이 같은 검사 출신인 김웅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범민주당 인사들의 이름이 담긴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시민단체 고발로 이 사건을 수사한 공수처는 손 검사장을 재판에 넘겼고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그의 공무상 비밀누설 등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한 바 있다. 검찰이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손 검사장에 대한 감찰을 벌여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과는 다른 판단이다. 검찰은 또 공수처가 혐의가 있다고 보고 넘긴 김 의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지만 법원은 손 검사장과 김 의원의 공모관계를 인정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없었다면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주요 사건에 집중해 성과를 내고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면 공수처 역할 강화를 위한 법개정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