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 그림자 | ① 사라진 정치
켜켜이 쌓인 불신…서로 “진정성 의심”
여야정협의체 단 한 번도 열지 않아
“진영·팬덤정치 폐해가 더욱 커져”
권한집중 대통령, ‘타협’ 의지 부재
▶1면에서 이어짐
여야의 협치는 부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8년 8월에 이뤄진 여야 5당 원내대표간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단 한차례 만나고는 끝났다. 윤석열정부 들어 한덕수 국무총리가 여야정실무협의체나 여야정협의체 사무국 구성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여야는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여야정민생협의체 요구(2021년)나 윤석열 대통령의 여야정협의체 논의(2024년)에 대해 민주당은 국면전환용으로 보고 사실상 거부했다.
신뢰가 사라진 빈 자리는 팬덤이 채웠다. ‘친윤(친윤석열)’ ‘친명(친이재명)’ 체제를 강고화하는 데 주력한 거대양당은 결국 ‘강성 지지층의 굴레’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강성 지지층의 놀이터로 불리는 유튜브와 함께 팬덤 정치에 빠져 든 모습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22일 “21대 국회를 돌아보면 진영정치, 팬덤정치의 폐해가 더욱 커졌다”며 “근본 원인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결합한 데 기인한 바가 크다”고 진단했다. 국회 초선 당선인 의정연찬회에서도 “대의 민주주의의 큰 위기”라며 “극단적 진보·보수 팬덤은 상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배제하는 수단으로, 좌표를 찍고 집중적으로 공격해 정치의 본령을 훼손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근본문제로는 리더십 문제가 꼽힌다. ‘적폐청산’을 앞세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검찰공화국’으로 야당을 몰아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정치 부재’의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앞의 중진 의원은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입법부, 야당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의 시작이자 해결의 시작”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에 주력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을 동원해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을 무시하다 보니 어떻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연금개혁에 대해 타협이 안되는 이유도 결국 서로 공을 누가 가져가느냐의 문제 아니냐”면서 “야당의 제안을 과감하게 수용하면 양쪽 모두에게 성과로 남을 텐데 상대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다”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에서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을 만나거나 전화해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나”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고 야당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려야 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취임 2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는데 이렇게 성사될 수 있었던 것도 수차례 이 대표의 요구에 답을 주지 않던 윤 대통령이 전화로 제안한 결과였다는 설명이다.
22대 국회가 21대 국회의 연장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 모두 사법리스크에 걸려 있고 그렇다보니 대화와 타협, 용인, 이해 등 ‘정치’를 위한 기본 환경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며 “앞으로도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