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총선민의, 도대체 뭘 수용했다는 건가
4.10 총선이 끝난 지 두달이 되어간다. 여당이 참패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총선 민심을 수용하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것으로 국민은 받아들였다.
총선민의 수용은 말로 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의 변화로 보여줘야 한다. 채 상병 특검법과 같은 정치사안은 논외로 하자.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심정으로 표를 던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물가도 무섭고, 부자감세니 하는 말도 지긋지긋하다는 마음이었을 게다. 대통령의 다짐까지 있었지만 정부 경제정책은 바뀐 게 없다. 오히려 ‘대기업·집부자 편중’ 경제정책은 더 강화되고 있다.
지난 23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들여다보자. 정부는 윤 대통령 주재로 2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열고 26조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미래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다. 재정여력만 된다면 더 많이 지원해도 좋을 사안이다.
문제는 정부 재정·경제정책의 ‘균형’이다. 반도체 대기업에 26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서는 그 절반이라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부자감세’정부로 낙인찍혀 있다.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과도 관련이 깊다. 그런데 총선 뒤 정부가 발표한 첫 대표정책을 서민지원이 아닌 대기업지원정책으로 결정한 셈이다. ‘총선민의 수용’이 아니라 ‘총선민의 불복’이란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총선 뒤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정책기조 변화’ 움직임은 없었다. 회의 뒤 최상목 부총리는 내년(2025년) 예산편성시 연구개발(R&D), 저출생대응, 의료개혁 관련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논란이 됐던 R&D 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전면 폐지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기존의 긴축(건전)재정과 부자감세 기조는 유지할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감면이나 금융소득투자세 폐지 방침의 철회와 같은 구체적 정책기조 변화에도 입을 다물었다.
윤석열정부 출범 뒤 서민과 중산층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정부는 최근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3.4% 늘어 ‘깜짝 성장’을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가 이례적으로 동시에 홍보자료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1분기 가계 실질소득은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소득보다 지출이 더 큰 적자가구 비율도 201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수출이나 대기업의 ‘깜짝 성장’이 서민과 중산층 살림살이 개선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계수치가 입증한 셈이다.
정부가 총선민의 수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노력하고 있다는 말인지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홍식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