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임금체계 개편 논의, 선행과제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최근 주목을 끌고 있다. 정답은 직무급이라는 논조가 대부분이다. 과연 그런가. 어느 전문가는 우리나라 기업에서 근로자들이 직무급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계호봉에 막힌 임금인상 요구, 직무등급에 대한 공정성 결여, 직무 세분화로 인한 인력 운용의 경직성, 그리고 승진 정체에 따른 근로자들의 불만 등이다.
임금체계 노사 당사자간 교섭의 산물, 직무급만이 정답이 아닌 이유
임금체계는 특정 국가나 사회 속에서 노사의 교섭, 타협의 산물이다. 직무급이 바람직하다고 단정해서 그것을 도입하려고 해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에 필요한 선행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임금체계에 대한 지식의 공유다. 2022년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 부가조사에 의하면 임금체계 비중은 호봉급 13.7%, 직무급 10.8%, 기타 24.2%, 무체계 61.1%였다.(복수응답) 100인 이상 사업체에 한정하면 호봉급 55.2%, 직무급 35.9%, 직능급 27.6%, 무체계 3.6%로 나타났다. 임금체계가 없는 기업이 전체의 61.1%나 되는데 어떻게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지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 정보가 없는 가운데 아무리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해도 파급력은 없을 것이다.
둘째, 임금체계에 대한 신뢰도 제고다. 임금체계 논의 대상도 대기업 중심인데 기업명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해당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적어도 1000명 이상 대기업의 임금체계는 기업명으로 그 정보가 공유되어야만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대기업의 임금체계에 관해서는 많은 매체를 통해 당해 기업명이 표기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 임금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셋째, 임금체계에 대한 이해의 제고다. 개별기업이 갖고 있는 현재의 임금체계는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노사의 합의 또는 타협의 산물로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그 합리성을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러한 이해 없이 특정의 임금체계가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현존하는 임금체계를 재단해봐야 실효성이 없다.
넷째, 임금체계의 단순성과 예측가능성이다. 임금은 근로자의 삶이 달려있다. 매월 임금이 바뀌면 근로자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고 직장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지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과도하게 많은 수당, 그리고 상여금(고정 상여금, 성과금 등)을 줄여서 기본급으로 재편해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그래야만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근로자의 몰입도 및 납득성도 높아질 것이다. 현재 대기업의 상여금이 10개월 전후인데 그런 상황하에서 임금체계를 논해봐야 실효성 있는 결과를 얻기 힘들 것이다.
다섯째, 임금체계 개편의 당사자주의다. 개별 기업 노사가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특정의 방향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고용부는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자율의 영역이라 장기적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러한 입장을 지속하길 바란다. 일부 지식인도 특정 임금체계가 정답인양 그것을 강요하려고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정부 주도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바람직하지 않아
정부의 역할은 이상과 같은 선행과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결코 정부가 주도적으로 임금체계를 바꾸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임금체계를 바꾸려면 그것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직무급 체계로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면 올라가는 생계비 증가의 필요성을 약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비 주거비 노후생활에 걱정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대학까지의 무상교육, 공공주택의 충분한 공급, 연금의 충실화가 그것에 맞은 환경일 것이다.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