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진로…고민하는 청년들 ‘문학엽서’가 보약

2024-05-28 13:00:03 게재

성북구 대학축제 연계한 ‘마음약국’ 눈길

문화공간이육사 현대문학 체험과정 준비

“2학년인데 지금 전공이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교육 분야, 과학교육으로 진로를 틀어야 할까 고민입니다.” “학부 특성상 남학생들이 대다수인데 의사소통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최근에 서운할 일이 있어서 표현을 했는데도 답이 없어요. 진로 고민까지 더해져 ‘휴학이 마려워’요.”

고려대학교 기계공학부에 재학 중인 송승원·유보미씨가 최근 일주일 안팎으로 품고 있는 고민들이다. 두 청년은 현재 각각 ‘가슴이 먹먹한’ ‘신경이 예민한’ 상태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같은 시기를 헤쳐 나와 지금은 서울 성북구 종암동 '문화공간이육사'에서 일하고 있는 조성진·김서영 주임은 시와 수필에서 발췌한 글귀를 각각 하루 3회와 1회씩 읽어볼 것을 처방했다.

성북구가 고려대 축제현장에서 마음약국을 방문한 청년들이 고민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성북구 제공

28일 성북구에 따르면 문화공간이육사가 청년들을 위해 준비한 현대문학 작품 체험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학 축제현장 한켠에 자리를 깔고 학업 진로 사랑 이별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고 지쳐 있는 청년들 이야기를 듣고 문학작품 속 글귀를 담은 엽서를 약처럼 처방하는 ‘마음약국’이다. 지난 21~23일 고려대 축제와 연계한 마음약국에는 하루 300명 이상이 찾았다.

문화공간이육사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가족이 종암동에 거주했던 역사성을 기념해 지난 2019년 문을 연 지역문화공간이다. ‘청포도 라운지’ ‘광야 상설전시실’ ‘옥상정원 절정’ 등을 활용해 전시·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이번에는 지역사회로 나왔다. 2021년 2000명에서 지난해 5000명 가깝게 방문객이 늘었지만 중장년층이나 가족 등과 비교해 청년층이 적다는 데 착안했다. 구는 “성북구에 8개 대학이 있는데 문화공간이육사까지 발걸음을 잘 않는다”며 “대학생은 물론 주민들에게 공간을 더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주변에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듣고 문학작품으로 위로를 얻고 해답을 찾는 걸 돕기로 했다. 조성진 주임은 “힘들거나 지쳐있을 때 문학이 힘이 된다는 걸 믿는다”며 “독립운동이라는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 정작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육사의 삶이 막막한 상황을 헤쳐가는 대학생들의 현실·고민과 상통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포도’ ‘광야’ 등 육사의 대표작과 함께 ‘계절의 오행’ ‘문외한의 수첩’ 등 보기 드문 수필 속에서 청년들에게 실마리를 줄 글귀를 찾았다. 김용택 황지우 이병률 등 작가의 작품까지 21종을 엄선해 처방전에 담았다. 각 작가와 출판사측도 청년들을 문학으로 위로하자는 취지에 흔쾌히 동의했다.

대다수 청년들이 학업 진로 사랑 이별로 인한 고민을 호소했다. 고민이 한달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스스로를 탓하는 형태로 악화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과 교수까지 직장 내 스트레스나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을 안고 찾아왔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나 취업해서, 연애에 성공한 뒤 소식을 전하겠노라 약속도 했다. 송승원씨도 “육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묵묵히 했다고 한다”며 “먼저 살았던 삶과 글에서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북구는 대학 축제는 물론 희망하는 모임·단체 등을 찾아가 마음약국을 지속 운영할 계획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청년들이 주변에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며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를 초인처럼 견뎌온 이육사의 정신이 담긴 문학엽서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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