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 공격 반대’ 바이든의 이율배반
난민촌 참사에도 이스라엘 지원정책 불변 … 레드라인 운운하며 표심잡기만
피란민들이 밀집해 있는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본격화되면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도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궁색한 논리만 앞세우고 있다. 나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정책 역시 변함없다는 태도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으로 난민촌 민간인 45명이 사망한데 이어 28일에도 이스라엘의 포격으로 최소 21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탱크가 라파 지역 중심가까지 진입한 것이 목격됐다는 외신보도까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저지는커녕 지원정책에도 변함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28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브리핑에서 “현재 거론할 (이스라엘에 대한) 정책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이스라엘이 대규모 부대와 함께 영토의 큰 부분들에 걸쳐 라파로 치고 들어가는 것을 보기를 여전히 원치 않는다”며 “현 시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커비 보좌관은 “탱크 한 대, 장갑차 한 대 정도로는 새로운 지상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라파 중심부의 인구 밀집지역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벌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부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피란민이 밀집한 라파에서 민간인 보호 대책이 준비되지 않는 한 미국 정부는 대규모 지상전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일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한 대규모 지상전에 나설 경우 공격무기와 포탄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라파공격은 현실이 됐고 난민촌 참사가 잇따르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백악관 커비 보좌관은 난민촌 폭격 이후 이미지를 보고 “가슴 아프다. 이스라엘은 (난민촌 인명 희생이) 비극적 실수라고 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조사결과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비극적(tragic)이라는 단어로는 묘사를 시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며 개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주말 동안 라파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인명 피해에 깊이 슬퍼하고 있다”면서도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냉혹하게 살해한 책임이 있는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할 권리가 있으며 그게 이번 공습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뒤로 숨지 말아야 한다”며 책임을 하마스로 돌린 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작전을 수행하면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할 의무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미 당국자들의 발언은 그동안 미국이 반대해 왔던 대규모 지상전이라는 레드라인은 아직 넘지 않았으며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어느 정도는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최근 3주간 약 100만명의 민간인이 라파에서 대피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미국 당국자들 사이에서 라파 지상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잦아든 점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지난 22일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은 한 대담에서 ‘이스라엘의 라파 군사작전이 안전하고 책임 있게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보고에 따르면 많은 민간인이 라파에서 빠져나왔다”고 답했다. 이처럼 민간인 대피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대규모 지상전이라는 레드라인도 아직 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또 다시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용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26일밤 라파 서부 탈 알술탄 피란민촌을 공습해 여성과 노약자 23명을 포함해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쳤다고 집계했으며, 28일 추가로 이스라엘군이 라파 서쪽 난민촌을 공격해 최소 21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결국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국제사회와 미국내 반대여론을 의식해 겉으로는 대규모 지상전 반대를 외치면서도 중요한 자금줄이자 또 다른 지지층인 친이스라엘 표심까지 여전히 버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