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지뢰밭 빠진 글로벌 컨설팅기업
포린폴리시 “맥킨지·베인 등 미중 보안전쟁 휘말려” … 자유롭게 정보 흐르던 시대 종언
올해 초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경영진은 심각한 정치적 난관에 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올해 2월 말 “맥킨지 중국지사가 2019년 중국 중앙정부에 경제자문을 제공했다고 홍보했다. 또 맥킨지가 주도하는 싱크탱크 UCI(Urban China Initiative)가 2015년 ‘기업과 군의 협력을 강화하고 민감한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밀어내라’고 중국정부에 조언하는 보고서를 준비했다”고 보도하면서다.
그동안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적극 홍보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던 맥킨지는 해당 보도에 대한 성명서에서 “중국 중앙정부는 절대 우리 고객이 아니었다”며 “우리는 75년간 미국정부를 지원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을 뒤집기는 어려웠다. 미국 공화당 고위정책 입안자들은 맥킨지가 연방정부와 맺은 수천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해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미국 존스홉킨스대 헨리 파렐 교수와 조지타운대 에이브러햄 뉴먼 교수는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과거라면 맥킨지 같은 정보브로커들은 각국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고 국경을 넘어 데이터를 공유해도 별다른 논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컨설팅기업들은 미중 지정학적 지뢰밭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역할 커진 정보중개업
맥킨지뿐 아니다. 미국 기업실사 전문 컨설팅회사인 민츠그룹의 베이징지사는 지난해 중국경제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중국당국에 의해 급습을 당했다. 한달 뒤 기업에 경영자문을 제공하는 베인앤컴퍼니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러한 현실 변화는 바뀐 규제와 맞물려 있다. 중국은 데이터 수출을 금지하는 규정의 일부를 완화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어떤 정보를 수출할 수 있고 없는지 상당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민감한 데이터를 느슨하게 취급했던 미국은 특정 종류의 정보 수출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그동안 컨설팅회사나 기타 정보중개업체는 여러 국가 여러 고객기업들과 쉽게 일할 수 있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세계화가 곧 시장확장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유지하며 경쟁사를 이기는 것이었다.
정보 중개는 정치적으로 위험 부담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각국 정부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국가의 많은 고객과 협력하는 국제 컨설턴트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컨설팅기업은 세계화된 경제에서 중요한 중개자로서 조언을 제공하고 이른바 모범사례를 형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중국 대기업들은 미국의 경쟁기업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이를 현지상황에 맞게 조정했다. 컨설턴트들은 정부고객을 위해서도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회계법인과 데이터 중개업체 같은 다른 주요 국제기업들도 이 작업에 참여해 여러 나라 정부에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전문 컨설팅회사가 기업에 다양한 규제 체제 하에서 자본을 조달하거나 안전하게 투자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처럼 각국 정부에게도 투자유치, 공공서비스 제공 최적화, 다른 국가 규제기관의 사례로부터 배우는 방법 등에 대해 조언했다. 각국 정부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혁신하고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보 브로커도 정부의 중개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기업들은 정보 브로커가 자신뿐만 아니라 경제적 경쟁자에게도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기밀이 유지되는 한 이를 감내할 수 있다. 정부가 스스로를 기업과 같다고 생각했을 때 마찬가지로 그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장경쟁보다 보안경쟁
하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적을 돕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될 수 있다. 기업들은 세계화가 지정학적 위험을 의미하고 정보가 가장 위험한 자산으로 변한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은 경제정보를 단순히 혁신과 더 나은 기업서비스를 위한 원동력으로만 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지도자들은 전략정보의 교환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광범위한 제한을 가한 반도체 부문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이제 기업컨설팅 기업들이 곤경에 처했다.
미국과 중국은 시장경쟁보다 보안경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두 나라 정부의 입장에선 한때 경쟁 정부에 대한 시장 조언처럼 보였던 것이 이제는 적과 정보를 거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적의 경제력을 키우는 것은 언젠가 적에게 사용될 수 있는 군사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데이터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적의 무기를 직접적으로 강화하는 의미가 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클라우드컴퓨팅이 적국의 인공지능(AI)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바이든정부의 엄포 속에 최근 중국에 주재하는 클라우드컴퓨팅 직원을 ‘재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전면적인 변화는 맥킨지의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수년 전만 해도 무해하게 여겨졌던 컨설팅활동이 오늘날에는 거의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외국정부와 직접 교류하지 않고 시장정보만 수집하는 기업들도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중국 규제당국은 “민츠그룹이 외국 관련 통계조사를 수행했다”고 주장하며 민츠에 대한 강압적 조치를 정당화했다.
파렐과 뉴먼 교수는 “지정학적 경쟁의 세계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무고한 경제데이터 수집도 가혹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정부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대국의 경제적 취약점을 발견하고 악용해 어떤 기업이 어떤 기업과 재무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어떤 기업이 외국기술에 의존하고 있는지 파악해 무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미 특정 첨단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으며 중국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비즈니스 관계와 기술 발전에 관한 주요 데이터에 대한 외국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자국에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20년 블룸버그통신이 중국 공산당 엘리트들의 부패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자 중국정부는 블룸버그 지국을 수색하고 국영기업에 블룸버그 단말기를 임대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블룸버그는 시진핑 주석과 관련한 두번째 기사를 삭제하고, 부패사실을 폭로한 자사의 담당기자를 정직시킨 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맥킨지 등 전통적인 정보 브로커만 타깃이 되는 건 아니다. 미 의회는 미국 항구에서 사용되는 중국산 크레인이 중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각종 정보를 무선으로 전송하는 게 아닌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산 공항검색 장비에 비슷한 의심을 하고 있다. 파렐과 뉴먼 교수는 “데이터혁명은 거의 모든 주요 기업이 정보 브로커이며, 따라서 원치 않는 전투원으로서 표적이 되거나 압박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수집, 위험한 도박 돼
국가안보 논리가 세계화된 경제를 집어삼키면서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은 그 자체로 위험한 도박이 됐다. 중국 소셜미디어 틱톡의 경우 사업모델과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은 틱톡을 시급한 국가안보 위험으로 인식하게 됐다. 미국은 매각을 강제하거나 미국 내 운영을 중단시키기 위한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바이든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클라우드서비스 제공업체와 데이터 브로커가 중국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의 데이터보안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바이두와 동맹을 맺어야 했다.
파렐과 뉴먼 교수에 따르면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모든 주요 글로벌기업은 원치 않는 관심과 조치를 받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맥킨지처럼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기업들은 어느 정도의 정보 브로커 역할을 하는지, 수집한 구체적인 정보와 데이터는 무엇인지, 어떤 관할권에 노출돼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생산과 같은 전략적 기술분야의 고위 경영진은 지정학이 사업모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시급히 교육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게는 정보수집·중개 사업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급진적인 조치일 수도 있다.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은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 전망이다.
맥킨지나 베인 같은 정보 브로커들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특정모델과 연관돼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그 모델은 곤경에 처했다. 정보가 경제적 투입물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위험과 불이익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맥킨지가 맞은 위기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전망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