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대화 가로막는 ‘대통령의 대화법’
시지프스가 힘겹게 밀어올렸지만 바로 제자리로 돌아온 바위처럼 ‘연금개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야는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3%로 올리는 데까지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한 격차는 좁히지 못하고 ‘폐기’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안(소득대체율 44%) 수용’ 카드를 던지며 원포인트 본회의를 제안했다. 이 대표의 승부수가 나오자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한수’를 기다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대답은 ‘거부’였다. 대통령실은 “연금개혁은 청년세대에게 물어봐야 하는 문제”라거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수개혁(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을 먼저하고 구조개혁은 22대 국회에서 하자는 ‘2단계 개혁안’ 역시 “구조개혁까지 한꺼번에 해야 한다”는 논리로 걷어찼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조차 모수개혁이라도 해야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대통령실은 요지부동이었다.
왜 그랬을까.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주도권 경쟁에서 밀릴까봐 두려워하는 걸까? 윤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껏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놓지 않고는 여당을 앞세워 훈수를 두면서 ‘비토’만 놨다. 국민대표 500명이 숙의한 공론조사 결과가 입맛에 맞지 않게 나오자 정부는 “당초 재정안정을 위해 연금개혁을 논의한 것인데 도리어 어려움이 가속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된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이기일 복지부 1차관) 윤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에게 딱 맞는 조건과 방안’이 아니면 거부하겠다며 이빨을 앙다문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대화법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00일이 지나도록 아직 교착상태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의정 갈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은 ‘2000명 증원’이라는 자신이 정한 ‘조건’을 꽉 잡고 의사들에겐 ‘조건없는 대화’를 요구했다. 의사들은 ‘증원엔 찬성한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윤 대통령은 ‘백기투항’만을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에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의 몫이 됐다.
대화는 타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타협할 생각이 없다면 애당초 대화는 불가능하다. 얻을 게 없는 대화에 몇 번 나와 본 의사들은 ‘타협하지 않으려고 결심’한 상대와의 대화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경험했을 터다.
‘굴복시키고야 말겠다’거나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검사스러운 방식의 대화법은 검찰 외의 영역에서는 이미 폐기됐다. 게다가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을 지탱하던 힘도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장악력 약화는 자신보다 주변에서 더 잘 안다. 여러 정권을 경험하면서 권력의 부침을 경험한 공무원들이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대를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그게 자신도 살고 성과도 낼 수 있는 길이다.
박준규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