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첫 공시 KB금융·키움…투자자 ‘냉랭’
자율만 강조한 가이드라인 기준 모호
내용 없이 무의미한 순위 경쟁 지양
이사회 중심으로 깊은 고민 후 공시
금융당국이 밸류업 가이드라인 확정안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KB금융과 키움증권이 잇따라 밸류업 공시를 내놨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내용 없는 예고 공시, 이미 두 달 전 발표했던 기업가치 방안과 겹치는 내용을 공시하는 등 보여주기 식에 머물렀다는 평가다. 밸류업 공시가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상장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일각에서는 자율만 강조한 가이드라인의 기준이 모호해 이는 이미 예견됐던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무의미한 순위 경쟁을 지양하고 진정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을 이사회 중심으로 깊게 고민한 후 공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정안 발표 이틀 만에 공시 =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첫날인 27일 KB금융은 4분기 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겠다는 안내(예고) 공시를 발표했다. 이어 28일에는 키움증권이 상장사 최초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키움증권이 밝힌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는 기업 개요, 현황 진단, 목표 설정, 계획 수립 및 이행, 소통 방안 등이 포함됐다. 주목할 만한 핵심 부분은 3개년 중기 목표로 △목표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제시 △주주 환원율 30% 이상 △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상 달성 등으로 요약된다.
키움증권은 ROE 15% 목표달성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 온라인 자산관리 강화를 통해 기존 자산관리부문의 사업 기반을 공고히 하고, 기업금융(IB)과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문에서는 리스크 관리를 기반으로 자산 회전율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현금 배당 및 자사주 취득을 통해 3년간 별도 순이익의 30% 이상 주주 환원 계획. 환원 정책은 3년 단위로 재고. 이미 보유한 자사주(140만 주)는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아울러 초대형 IB·발행어음 인가,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설립 등 신사업 진출 및 투자자 대상 소통 강화 등을 통해 현 수준인 PBR 0.6배보다 기업가치를 높일 방법을 모색할 방침이다.
다만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키움증권이 지난 3월 이미 공시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과 상당 부분 중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민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 13일 키움증권의 기존 공정 공시 내용과 대비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며 “이번 공시는 이의 구체화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주가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모호한 자율성 문제 … 밸류업 워싱 우려 =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키움증권의 공시에 대해 ‘C학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포럼은 “디테일이 많이 부족하고 깊이 고민한 흔적도 없어 보인다”며 “공시내용 또한 대부분 지난 3월 회사가 밝힌 기업가치 제고 방안과 중복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정부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핵심인 주주자본비용(COE)과 총주주수익률(TSR)이 빠진 것은 유감”이라며 “다른 회사들은 먼저 공시하겠다고 순위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이사회를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충실한 제고 계획을 검토한 후 공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증권가에서는 금융당국이 확정한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공시 여부와 내용, 형식을 모두 기업 자율에 맡기면서 오히려 기업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은 공시 여부와 내용, 형식을 모두 기업이 선택할 수 있게 맡기면서 주주 및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제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해진 형식이 없어서 공시에 대한 부담이 크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가 비교해야 할 지표에 대한 판단 기준도 모호한데다 ESG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처럼 ‘밸류업 워싱’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