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고령화 청년층 진입

특성화고, 현장연계 강화해 건설장인 육성 산실로

2024-05-30 13:00:08 게재

독일 마이스터 요람인 ‘직업학교’ 해당 …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에 숙련인력 육성체계 전담조직 구축해야

‘청년 건설장인’ 육성의 기본은 직업계 고등학교(특성화고)다. 특성화고는 ‘청년’과 ‘3년의 시간’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건설산업은 그 소중한 기본을 놓치고 있다. 청년층 진입을 외치면서 정작 청년이 모여 있는 특성화고는 외면하고 있다. 단기간에 기능을 익힐 수 없음을 알면서도 3년을 확보한 특성화고와 연계하려 하지 않는다. 숙련인력 육성 체계를 만드는 일에는 소극적이면서 당장의 돈 문제와 외국인 근로자 도입엔 진심인 듯하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청년층 진입 및 육성 촉진을 목적으로 2017년에 뉴마이스터 양성훈련을 시작했다. 특성화고 3학년을 대상으로 교내실습과 현장실습을 통해 실제 기능을 배우고 취업할 수 있도록 학교와 건설업체를 연계했다. 교육을 주도했던 이명래 일반건축시공기능장은 “현장에 가까운 실기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의 현장 적합성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교육시간이 너무 부족해 기능 향상에 한계가 있다. 더 일찍 시작해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평가했다. 처음엔 1개월이었던 교내실습을 2개월로 다시 3개월로 연장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있다. 직업학교 3년의 시간을 활용해 현장과 연계된 심화교육을 통해 청년을 육성하는 독일의 직업학교다. 현장과 연계해 특성화고 학생을 건설장인으로 육성하는 과제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살펴본다.

특성화고 건설현장 맞춤형 도제식 훈련│2017년 9월 25일부터 4주간 경기 남양주공고 현장실습장에서 건설근로자공제회 후원으로 총괄교사 이명래 일반건축시공기능장과 김해영·김승진 산업현장교수가 3학년 학생들에게 조적·미장·타일직종 훈련을 실시했다. 사진 남양주공고 제공

#. 1년간 건설현장 실습을 경험한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을 몇 년 전 만났다. “학교에선 사진으로만 배웠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었어요. 실습을 통해 공구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어요. 제 손을 거쳐 아파트가 지어진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요. 현장실습 뒤 장래희망이 건설기능인에 다가선 느낌이에요. 실력을 키워 어서 반장이 되고 궁극적으론 현장소장이 되고 싶어요.”

#. 이 학생을 지도한 골조(형틀·철근)반장의 평가다. “학교 수업을 듣고 자격증도 따서 그런지 아는 게 많고 공구사용과 기술습득에서도 ‘일머리’가 빨리 깨입니다. 이 속도로 성장하면 5년이면 팀장, 10년이면 저와 같은 반장이 될텐 데, 그때 얘들은 겨우 30세입니다. 현장에서 보물이 될 겁니다.”

건설현장에서 25세의 팀장과 30세의 반장, 지금으로선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하기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 1년 실습의 성과가 이렇다면 현장과 연계해 3년을 배울 경우 그것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해 기능인 공급이 줄어든다. 일부는 기계화하고 일부는 외국인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팀·반장급과 A급 기능인만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육성해야 한다.

하지만 고숙련자일수록 육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3년의 시간과 청년을 확보한 특성화고가 소중하다. 우리의 특성화고는 독일 마이스터의 요람인 직업학교에 해당한다. 하지만 숙련인력의 수요자인 건설업계는 지금껏 특성화고 학생 육성에 소극적이었다. 학생들은 현장과 단절돼 숙련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현장 진입도 기피했다. 이러한 관행이 누적된 결과가 숙련인력의 부족, 기능인의 고령화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 건설훈련센터 훈련생 수업일정표 │ 독일 수공업회의소 건설훈련센터 훈련생의 1학년(위)에서 3학년까지 수업일정표로 직업학교(이론교육) 훈련센터(실기교육) 사업장(실습) 등 각 날짜에 해당하는 수업장소를 3가지 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3학년으로 갈수록 실습시간이 많아진다. 학교와 현장을 연계하는 독일 듀얼(Dual)교육시스템의 요체를 보여준다. 자료 심규범 대표, 2001년 입수·번역 재작성

◆현장실습은 학습이해 증가, 꿈을 구체화한다 = 드물게 3학년 때 현장실습을 경험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한다”며 아쉬워한다. 김 모 학생은 “1~2학년 때부터 현장견학이나 실습 등을 경험했다면 취업할 때 실제 업무와의 괴리감이 덜할 것”이라며 “현장실습 기회를 통해 내가 정확히 어떤 일을 배우고 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모 학생도 “현장에서 배운 게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부터 이론교육을 받거나 실기를 하면서도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다”면서 “만일 1학년 때부터 시작했더라면 3학년 땐 상당한 수준의 기능을 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경력의 이명래 일반건축시공기능장은 “특성화고는 ‘3년의 시간’ 이외에도 중요한 장점이 있다. 바로 기능은 뼈가 노글노글 했을 때 익혀야 참맛을 내는 법”이라고 말한다. 마치 뛰어난 운동선수를 어릴 때부터 육성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란다. 실제 특성화고 학생을 지도해 본 그는 “어린 학생들은 가르치는 대로 몸에 흡수해 1개월을 배우면 1년 이상 연마한 성인의 기능수준보다 낫다”며 “3년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놀랍게 성장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24년간 특성화고에서 재직 중인 윤성준 한양공고 교사도 “독일 직업학교의 듀얼(Dual)교육시스템처럼 어린 학생들이 3년 동안 학교와 훈련센터 그리고 현장을 오가며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학생은 현장에 대한 이해 위에서 이론과 실기를 익히고 실습을 통해 초보기능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건설사업주는 욕심낼만한 수준의 젊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학교는 현장성 높은 전문인을 육성하고 취업시키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다만 학생과 학부모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으려면 명확한 직업전망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 인식은 변화, 하지만 특성화고 정원은 축소 = 한편 특성화고 학생을 육성하자면 “학생들이 현장으로 오겠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호(5월 24일자, https://www.naeil.com/news/read/511380)에 미국 Z세대(1997~2010년 출생자)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건설현장의 기능인으로 진입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통해 달라진 청년층의 인식을 확인한 바 있다.

우리나라 특성화고 학생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설문조사가 있다. 2009년과 2015년에 건설관련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물었다. 2009년에는 ‘대학 진학’이 61.7%, ‘현장 기능직’이 1.0%이던 것이, 2015년에는 ‘대학 진학’이 13.3%로 줄고 ‘현장 기능직’은 26.7%로 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선배들이 대학 진학 이후 만족할만한 일자리에 취업하지 못한 것을 지켜본 특성화고 건설관련 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기능직으로 취업하려는 경향이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약 10년 전 설문조사이긴 하지만 최근 면담에서도 비슷한 인식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특성화고 문 닫히기 전에 특단의 대책 세워야 = 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차 건설 관련 특성화고의 문이 닫히고 있다. 1999년에 1만5670명이던 정원이, 2005년에는 6628명, 2022년에는 2438명으로 크게 줄었다. 퇴직공제제도 적용 확대와 전자카드 의무화 등 일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근로환경의 개선과 명확한 직업전망의 제시가 지연되면서 건설관련 학과의 폐지 및 정원 축소가 지속된 결과다.

서둘러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청년층의 자발적 진입을 촉진할 수 있는 명확한 직업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호 기사에서 언급한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의 활용방안 법제화가 절실하다.

둘째, 현장과 연계된 교육훈련프로그램을 마련해 1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 낮게는 현장견학을 시작해 실기와 실습 등으로 연계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이때 학교와 현장을 연계하는 플랫폼이 필요한데 건설근로자 전담 공공기관인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미 2017년부터 뉴마이스터 훈련을 수행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셋째, 교육훈련의 단절을 야기하는 병역의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병역특례 기회를 늘려 주는 것이다. 병역특례 수행 중이던 청년은 “병역을 대신해 일하면서 근무경력을 인정받고 높은 급여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기회가 확대되면 청년층 진입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전체 5201명의 산업기능요원 중 건설분야는 27명(0.52%)에 불과했다. 주된 이유는 신청업체 요건이 불합리한데 있다. 실제로 기능인을 고용하는 전문건설업체의 규모를 생각하면 현재의 100명 이상을 10명 이상으로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병역자원의 감소로 특례를 줄여가는 추세이므로 대안이 필요하다. 윤성준 교사는 “현장연계 교육훈련 후 군 입대시기를 연기해 3년 정도 근무경력을 쌓도록 하고, 군 복무기간 중 자신의 직종과 연계된 병과에서 복무하도록 해 이것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넷째, 특성화고 교사에 대한 연수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윤 교사는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며 “연간 60시간의 직무연수를 활용해 건설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현장연계 프로그램에 참여케 하고 교육청이 이것을 직무연수로 인정하도록 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설 ‘건설산업교육훈련위’ 설치를 = 현재 고용노동부의 주도로 2025년부터 시행하게 될 ‘5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여기에 반드시 건설산업 숙련인력 육성체계의 구축을 포함시키고 주요내용으로써 특성화고 현장 연계 프로그램을 담아야 한다. 고용부·국토교통부·교육부(교육청) 등 정부부처와 사업주·근로자단체 발주기관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해 가칭 ‘건설산업교육훈련위원회’를 상시 전담조직으로 설치하고 여기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 것을 제언한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전 건설근로자공제회 센터장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