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확 다가올 것 같은 AI시대,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2024-05-31 13:00:00 게재

인공지능 분야는 빠른 속력으로 새로운 기능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고 그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 듯하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 분야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엔비디아 애플 등 거대 IT 기업들의 무대였다. 그런데 어느새 오픈AI(비록 마이크로소프트와 자본이 긴밀히 연결돼 있긴 하지만), 앤트로픽(아마존의 큰 투자를 받은), 미스트랄AI와 같은 신생 기업들이 더욱 큰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인공지능 산업, 조만간 청구서 받는다

그런데 많은 일반인들이 놓치고 있는 기류가 점차 이 분야에 다가오고 있다. 바로 ‘청구서’다. 인공지능은 이 분야가 태동된 1956년 ‘다트머스 회의’ 이후 지금까지 대중과 언론이 매우 큰 관심을 가지는 기술 분야다. 그리고 화려하고 놀라운 데모로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가 그동안 투자한 금액에 대한 대가를 보여달라는 청구서가 날아오면 갑작스레 연구비와 투자가 얼어붙는 겨울을 경험했다. 그동안 여러번 이런 사이클을 보여왔다.

가장 최근의 인공지능 붐은 2012년 컨볼루션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s, CNN)에 기반한 알렉스넷이 ‘이미지넷 기반 영상 인식 챌린지’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그후 수년 내에 영상 인식률이 사람을 능가하게 됐다.

인공지능 분야 개척자인 MIT의 마빈 민스키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영상을 인공지능이 인식·판별하는 ‘컴퓨터 비전’이라는 문제를 방학숙제로 던져준 지 거의 50년 만에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이는 체스나 퀴즈 같은 게임 분야가 아닌 주요 인공지능 문제들 가운데 해결된 거의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문제가 해결된 사례가 나타나니 인공지능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관심과 투자를 받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 비전 분야와 달리 금방 인간의 능력을 따라 잡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순환신경망(RNN)이나 장단기 메모리(LSTM) 기반의 음성인식 음성합성 및 자연어 처리 분야의 성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해결되었다던 컴퓨터 비전 문제도 영상에 점 몇개만 찍혀서 오염되면 인식률이 갑자기 떨어지는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컴퓨터 비전도 아직 사람의 능력에 이르지 못한 것일 수 있다는 게 드러난다.

그러던 차에 자연어 처리 분야에 트랜스포머와 어텐션이라는 개념이 추가로 도입되면서 또 한 번 돌파구를 찾아내게 되고 이는 거대언어모델(LLM)이라는 분야로 정립되면서 챗GPT의 성공적인 발표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가장 큰 컴퓨팅 자원이 요구되는 방식이 딥러닝이다. 딥러닝 분야에서도 가장 큰 컴퓨팅 자원이 요구되는 방식이 거대언어모델이다. 최근에는 거대언어모델을 제대로 돌리기에 전세계의 전력이 모자란다는 주장까지 제기됐고, 거대언어모델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 아키텍쳐가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투자 정당성에 회의를 가지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투자 주체 대부분은 기업인데, 기업에 있어서 투자의 정당성은 바로 투자 대비 생산성 향상효과 즉 투자이익률(Return On Investment, ROI) 또는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 ROE)이다. 즉 인공지능에 요구되는 투자금이 커질수록 ROI나 ROE를 최소한 개념증명(Proof of Concept, PoC) 수준에서라도 제시하라는 것이 최근의 요구사항이다.

인공지능 무대 뒤의 큰손은 IBM

이에 따라서 지금은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인공지능과 결부되어 별로 생각나지 않는 한 기업이 인공지능 관련 비즈니스 분야에서 점차 뚜렷이 떠오르고 있다. 1997년 이 회사는 ‘딥 블루’라는 인공지능으로 체스계의 전설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으며, 2011년 이 회사를 세계 최고로 이끈 경영자의 이름을 딴 ‘왓슨’이라는 인공지능으로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 2명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이제는 한물간 회사라는 느낌마저 주는 이 회사 이름은 바로 IBM이다.

하지만 IBM의 메인프레임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회사에 탄탄한 수익을 올려주고 있다. 또 2018년 인수한 기업용 리눅스의 절대 강자인 레드햇과의 통합이 시너지를 내면서 클라우드 분야에서도 상당한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IBM은 2004년 레노버에 PC사업부를 매각한 이후 회사의 체질을 기업용 컨설팅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는데 이 전략이 주효했음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IBM은 자사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하지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주요 업체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컨설팅을 기업들에게 해주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각 기업들의 만족도와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유명 저술가이자 엔지니어, 컨설턴트인 톰 놀(Tom Nolle)이 ‘네트워크 월드’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자신의 조사분석에 따르면 어떤 인공지능을 회사의 어떤 부서, 어떤 업무 프로세스에 도입할지 또 그렇게 하면 ROI와 ROE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답을 구할 때 IBM의 컨설팅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상당하며 또한 그 컨설팅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공지능이라는 무대 뒤에서 큰 역할을 하는 의외의 큰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과연 기존 직업과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지 아니면 미풍으로 끝날지가 궁금하다면, 과연 각 산업계에 인공지능이 현재 어느 정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기대만큼 생산성에 크게 기여할지 궁금하다면, 이제는 화려한 격투 공연을 펼치는 배우들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엔비디아 오픈AI 앤트로픽 미스트랄AI뿐만이 아니라 이들에게 돈을 지불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IBM의 관련 행보에도 주목해야 한다.

애플의 관련제품 출시가 일상화 신호

그리고 인공지능 전쟁에서 낙오된 듯한 느낌을 주는 애플의 동향에 대해서도 주시해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별로 크지 않은 스타트업 기업들도 각종 인공지능 기술을 요란하게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애플이 조용하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본래 애플이라는 회사는 스티브 잡스 시절에도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것 저것 등 모든 것을 자유롭게 시도하지만, 제품출시 단계에서는 데모가 아닌 실생활 사용에서 진짜로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정도가 아니면 그동안 아낌없이 투자했던 기술과 시제품을 철저하게 탈락시키기로 유명한 회사다.

어찌 보면 만약 애플이 인공지능을 크게 활용하는 제품을 출시한다면 비로소 인공지능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유용성을 인정받게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서서히 일상에 꼭 필요한 서비스 될 듯

인공지능 기업들에게 투자자들과 고객들의 청구서가 서서히 날아들고 있고, 그 청구서를 꼼꼼히 검토해줄 회사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조만간 인공지능의 화려한 데모 속에 ‘생산성 향상’이라는 핵심명제가 숨어 있을지 아니면 또 한번 기대가 꺾이게 될지는 수년 내에 결과가 나올 것 같다.

평소 필자는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인류의 생활 패턴은 큰 변화를 맞이하겠지만 그 형태는 태풍에 세상이 뒤집히는 방식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자신도 몰래 어느새 일상에서 꼭 필요한 필수 서비스가 되는 식이 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이 처음에 팜 파일럿, 윈도우CE 기반으로 출시돼 해당 업계에서 무시받다가 이후 iOS,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출시돼 지금 와서 스마트폰 없는 일상은 생각할 수 없게 된 현실처럼 말이다.

이해성 내일e비즈 CTO/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