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본시장 개혁 어떻게 성공했나
일 증권업협회장 “밸류업 Top-down식 정부 주도 중요”
금융청·증권거래소·공적연기금 통합 리더십 중추적 역할
10년 전부터 ‘스튜어드십·기업 거버넌스코드’ 충실 이행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본격화하면서 일본 자본시장 개혁 성공 요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다. 이런 가운데 일본 밸류업의 성공은 10년 전부터 장기간 일관적으로 진행된 ‘스튜어드십·기업 거버넌스 코드’ 충실 이행과 금융청(FSA)·도쿄증권거래소·공적연금 등의 통합 리더십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의 주도 하에 진행되는 Top-down(하향)식 증시 지원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국민자산소득 2배 증가’ 장기적으로 제시 =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달 20일 독일에서 토시오 모리타(Toshio Morita) 일본증권업협회 회장과 대담을 통해 한국시장의 밸류업 정책 소개와 일본 증시상승 배경과 밸류업의 방향성에 대한 시사점을 논의했다. 모리타 회장은 이날 도쿄증시 활성화 원인에 대해 “기시다 총리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해외투자자들에게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수차례 설명하는 등 긴밀한 소통 노력을 해왔다”며 “가계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구조적 개혁을 Top-down방식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2021년 10월 출범한 기시다 내각은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구호를 간판 경제 정책으로 내걸고 2022년 6월 구체적 시행계획을 내놨다.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에서 거론된 금융산업 관련 부분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가계소득 증대, 스타트업 육성 등이다. 그해 11월에는 ‘국민자산소득 2배 증가’ 슬로건을 장기적으로 제시했다. ‘저축에서 투자로’로 자본시장 발전정책 중 하나다. 이후 일본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34년 전 거품 경제 때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1월 개편된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의 영향도 크다. 보유한도를 기존보다 3배 늘려 1800만엔으로 대폭 확대하면서 은행에 머무르던 자본이 금융시장으로 옮겨질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모리타 회장은 “올해 1분기 통계자료에 따르면 신NISA 계좌개설 수가 전년대비 3.2배 증가했고, 투자금액도 2.8배 증가했다”며 “NISA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일본 국민의 노후대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거버넌스 개혁 선행 = 일본 증시의 박스권 탈출 움직임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성공 비결은 2014년부터 시작한 스튜어드십 코드와, 2015년부터 시행된 기업지배구조 코드의 충실한 이행, 또한 이를 강력하게 추진한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 일본 공적연금(GPIF)과 중앙은행(BOJ)의 적극적 참여 확대 등이 꼽힌다.
일본 정부는 단순히 PBR(주가순자산비율)에만 집중한 게 아니다. 장기간 이어진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바탕이 된 후 도쿄증권거래소가 강력하게 시행한 ‘저PBR 개선’방안이 큰 효과를 본 것이다.
에추로 쿠로누마 와세다대학교 교수는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주요 특징을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기업지배구조 코드 제·개정 △증권거래소 구조 개혁 등으로 꼽았다.
일본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투자행동과 의결권 행사가 상장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기관투자자의 책임 이행 방침 수립, 이해 상충 관리, 기업과의 건설적 대화, 의결권 행사 방침 수립 등이다. 이는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가치 증진과 지속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원칙을 담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주주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한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마련했다. 주요 내용은 주주 권리 보장, 정보 공개, 이사회 책임 강화 등이다. 2021년 개정에서는 의결권 전자행사 플랫폼 사용, 기후변화 리스크 공개, 독립 사외이사 비율 확대 등이 추가됐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공적연금은 투자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또 도쿄증권거래소와 오사카증권거래소의 통합으로 인해 투자자 편의성이 떨어지자 거래소는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도쿄증권거래소 구조 개혁을 통해 기존 시장을 프라임, 스탠다드, 그로스 시장으로 재편했다. 도쿄증권거래소 주도로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이해 관계자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최고경영자(CEO)가 상장사와 행동주의 투자자의 “솔직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촉구하는 등 건설적인 대화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 거래소는 PBR 1배를 밑도는 상장사에 주가 상승 방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업 수익률과 자본비용 대응 잘하는 기업 주가 상승 = 한편 도쿄 증권거래소가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을 권고한 지 1년이 지났다. 최근 일본 증시 동향을 살펴보면 해당 정책초기에는 낮은 PBR 업종을 중심으로 주가 변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기업의 수익률과 자본비용에 대한 대응을 잘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 성과가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각 기업들이 주식스프레드 ‘자기자본이익(ROE) -자본 비용(COE)’를 적극 공시하기 시작하는 한편, 이를 이해하는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이 본격화됐다”며 “기업의 가치 제고가 주가의 본격적인 동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각 기업들의 Equity Spread를 중심으로 한 공시가 핵심에 있다. 자본비용과 자기자본 수익률을 적극 공개 및 공시하는 TSE프라임 시장을 중심으로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주가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