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

2024-06-04 13:00:29 게재

이원석 검찰총장, ‘김건희 여사’ 소환 시사

“수사팀 바른 결론 내리도록 지도하겠다”

‘이화영 회유 특검’에 이 “사법방해 특검”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할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이원석 총장이 김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 가능성을 또 다시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원석 총장은 3일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김 여사 소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수사팀이 재편돼 준비됐으니 수사팀에서 수사 상황과 조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해 바른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고, 그렇게 지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입장 밝히는 이원석 검찰총장 연합뉴스

검찰 인사가 마무리되고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수사 진용이 재편된 이후 ‘신속·엄정 수사’를 주문한 기존 입장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이 총장은 지난달 이 사건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한 이후 여러 차례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른 수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장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 관련 특검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소금과 같이 검찰 책무와 소명 다해야” = 최근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와 긴장을 노출했던 이원석 총장은 새로 수도권으로 전입하는 고검검사급 검사 177명 앞에서도 검찰의 소명에 대해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검에서 열린 전입 인사 행사 말미에 “여러분이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소망한다”며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낭송했다. 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있는 것, 현재는 항상 슬픈 것.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라는 내용이다.

이 총장은 낭송에 앞서 ‘직업’이라는 단어를 자리를 뜻하는 ‘직(職)’과 일을 뜻하는 ‘업(業)’으로 나누고는 “두 음절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큰 차이로 귀결된다”며 “자리를 얻으려는 욕심에 ‘업’을 하게 되면 사사로움이 개입돼 자신과 검찰과 국가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금이 짠맛을 잃는 순간 가치 없는 광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검찰이 공동체의 부패를 막고 사람의 몸에 필수적인 소금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다면 결국 쓸모없이 버림받게 되는 것”이라며 “주어진 자리에서 오로지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소금과 같이 제 몸을 녹여 국가를 위한 검찰의 책무와 소명을 다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전입해 온 검사들은 지난달 29일 단행된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 따라 발령받은 이들이다. 이번 인사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4차장 검사가 새로 임명됐고, 담당 부장검사들은 유임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동시에 수사? = 이와 관련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수사팀은 최근 사건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 여사에 대한 수사와 처벌 모두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화장품 등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최 목사는 지난달 13일에 이어 31일 검찰에 출석해 11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최 목사와 김 여사 사이에 오간 청탁 관련 대화 내용 등 증거 상당 부분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사망 때 국립묘지 안장 등을 부탁했더니 김 여사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실 소속 과장 등을 연결해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목사는 김 여사에게 명품 화장품 등을 건넬 때 김 여사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 직원 출신으로 현재 대통령실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진 관계자 2명도 함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진위를 명확히 가리려면 김 여사와 대통령실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김 여사 직접 조사 여부와 별개로 법리 적용 문제도 검찰이 고심하는 지점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묶어 함께 조사하는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여전히 서울중앙지검에 계류 중이다.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피의자 신분인데 고발장이 접수된 지 4년이 넘었지만 뚜렷한 수사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특검 발의 대단히 유감” = 한편 이원석 총장은 이날 민주당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회유 의혹을 수사하겠다며 특별검사법을 발의하자 강력 반발했다.

이 총장은 “이런 특검은 검찰에 대한 압박이자 사법부에 대한 압력으로, 사법 방해 특검”이라고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수사 대상자인 이화영 전 부지사와 민주당측에서 특검법을 발의해서 검찰을 상대로 수사한다고 하는 것은 그 뜻과 목적, 의도가 어떤 것인지 국민 여러분께서 아실 수 있을 것”이라며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형사사법제도를 공격하며 위협하는 형태의 특검이 발의된 것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된 이 전 부지사는 지난 4월 4일 1심 마지막 공판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대북 송금을 보고했다’는 진술을 하도록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지난해 6~7월 검찰청사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과 함께 술을 마셨고 이를 검사가 묵인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출정 기록과 조사실 사진까지 공개하며 이 전 부지사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총장은 이날 “이화영 부지사는 정치적으로 중량감이 있는 중진인데, 그런 분에 대해 어느 검사가 회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검사가 이화영 부지사에 대해 자신의 인생을 걸 수가 있겠느냐”며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김선일·구본홍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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