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밸류업 계획’ 공시 의무
이사회 참여·논의 내용 … 투자자와 소통 기재
핵심지표 준수율 59% … 전년대비 7%p 하락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제출 의무 법인은 내년부터 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도 공시해야 한다. 밸류업 계획 수립 여부와 이사회가 참여했는지, 투자자와의 소통도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현재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제출 의무 법인은 자산 5000억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2026년부터는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확대된다.
문제는 기업들이 얼마나 잘 지키느냐다. 기업들의 핵심지표 준수율은 59%로 전년대비 7%p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밸류업 계획 없다’고 공시해도 준수? = 한국거래소는 2025년 제출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부터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여부, 접근 방법 및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활용한 투자자와의 소통 여부 등을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고 4일 밝혔다.
개정내용은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보고서상 ‘기업가치 제고 계획’ 항목을 신설하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일자와 △계획 수립 과정에 이사회 참여 여부 및 주요 논의 내용 △투자자에게 설명하고 소통하였는지 구체적인 소통 일자 및 대상, 소통 채널, 소통과정에 임원 참여 여부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언제 밸류업 계획을 공시했는지, 이사회는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 밸류업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기업설명회(IR)를 열었는지 등을 보고서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 ‘자율성’을 보장한 밸류업 공시와 충돌하지 않을까? 거래소 관계자는 “지배구조보고서에 ‘밸류업 계획이 없다’고 공시해도 개정된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5일부터 시행된다.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및 주주와 투자자의 권익 보호 강화를 통한 중장기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공시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기업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구성된다.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3가지 대 항목에서 15개 세부 항목의 핵심지표 준수 여부를 작성해 의무공시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이사회 관련 지표 중 6년 초과 장기재직 사외이사 부존재와 감사기구 관련 지표 중 내부 감사기구에 대한 연1회 이상 교육 제공 지표가 제외되고 기업 밸류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금 배당관련 예측 가능성 제공 항목과 이사회 다양성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반영한 이사회 구성원 모두 단일성이 아님 항목이 신설된 바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는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526곳에서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접수했다. 올해부터 의무공시 대상 기업이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되어 164사가 최초로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했다.
거래소는 “현금배당관련 예측가능성, 최고경영자 승계정책, 내부통제정책 등 핵심지표 8개 항목 및 소액주주·해외투자자 등과의 소통, 임원 보수체계에 관한 사항 등 세부원칙 7개 항목 등 중점점검사항을 중심으로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와 기재 누락 및 오기재 유무 등에 대해 집중 검토할 예정”이라며 “기재 및 설명이 미흡한 보고서에 대해서는 기업의 소명 절차를 거쳐 정정공시 요구 등을 통해 기재 충실도를 제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주·이사회 관련 지표 준수율 낮아 = 하지만 기업들의 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준수율은 59% 수준으로 전년보다 하락했다. 특히 주주와 이사회 관련 지표 준수율이 낮았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4일 발표한 ‘500대 기업지배구조 지표 준수율’ 자료에 따르면 매출 상위 500대 상장사 중 2023년도 지배구조 보고서를 제출한 214곳의 핵심 지표 준수율은 평균 59%였다. 1년 전 66%보다 7%p 낮아진 것이다. 핵심 지표는 금융당국이 선정한 항목 15개로 구성된다. 기업이 스스로 항목별 준수 여부를 확인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항목별로 보면 감사기구 관련 4개 항목에 대해서는 평균 79.4%의 준수율로 잘 지켜졌다.
반면 주주관련 4개 지표의 평균 준수율은 59.1%였으며 이사회와 관련된 7개 항목 준수율은 48.5%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지표 중에서는 ‘집중투표제 채택’의 준수율이 가장 낮았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소수 주주의 의견을 대변하는 자를 선임할 수 있게 각 주주가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받아 이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 제도다.
지배주주가 아닌 일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의 선임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9곳에 불과해 4.2% 수준에 그쳤다. 리더스인덱스는 “오너가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소수주주의 의견은 받을 수 있지만, 경영권 방어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채택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새로 포함된 ‘현금배당 예측가능성 제공’ 항목의 준수율도 19%에 그쳤다. 기업 5곳 중 4곳에서는 배당받을 주주를 정하는 배당기준일이 지난 뒤에 배당액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이 경우 투자자는 배당을 얼마 받을지 모르는 채로 주식을 살 수밖에 없어 미국 등과 달리 장기 배당투자가 활성화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엘지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시가총액 상위 주요 기업이 모두 이런 경우에 해당했다.
한편 지배구조보고서를 제출한 기업들 중 50%(7개) 미만의 준수율을 나타낸 기업은 65개사다. 이중 티웨이항공과 이수화학, 대한제당은 3대, 한국단자공업은 2개로 20% 이사 준수율을 보였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