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급등세 꺾였다는데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2024-06-07 13:00:00 게재

체감물가 높은 ‘합리적 이유’ 있었다

외식물가, 3년 연속 전체물가 웃돌아

정부는 “2% 중반대로 안정”이라지만

국제유가·공공요금 등 상승압력 여전

2분기 이후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월 이후 두 달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로 내려왔다. 정부는 하반기에는 전체 물가가 2%초중반대로 더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체감물가다.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물가는 아직 ‘고공행진’이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지출비중이 높은 먹거리 물가는 36개월 연속 전체 물가를 웃돌았다. 총선 전까지 정부압박에 동결됐던 식품가격이 6월 들어 일제히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하반기에도 정부 전망과 달리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예측 불가한 중동정세에 따라 국제유가는 언제든 출렁일 태세다. 상반기 내내 정부가 억눌러온 공공요금은 하반기 인상이 불가피하다.

밖에서 밥 먹기 힘드네 외식 물가 상승률이 지난 3년 동안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치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명동거리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소비자물가, 안정세 돌입? = 7일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7% 오르며 두 달 연속 2%대 물가를 기록했다. 상승률은 지난해 7월(2.4%)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지난 4월(2.9%)과 비교해 0.2%p 낮아졌다.

정부는 ‘3월 물가 정점론’을 펴고 있다. 지난 3월을 기점으로 물가 상승세가 하락전환했다는 분석이다. 농산물과 석유류 등 물가 상승세를 견인해온 요인들이 점차 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국제유가도 5월이 4월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부는 변수가 많은 장바구니물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농산물과 식품원료 51종에 대한 할당관세를 신규 적용하거나 연장하기로 했다. 식품·외식업계의 물가 부담 완화 동참을 유도하는 한편, 민생밀접 분야에서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시장 감시를 강화도 병행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 물가상승률은 2%대로 둔화됐으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서민 생활의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면서 “국민께서 느끼시는 생활물가와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정부·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더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체감 어려운 물가지표 = 하지만 둔화추세라는 물가지표는 체감과는 거리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먹거리 가격 상승세가 여전한 탓이다. 실제 상반기 내내 사상최대 상승률을 기록한 사과, 배 등 과일 가격이 서민들을 괴롭혔다.

먹거리 가격 상승세는 물가지표로도 확인된다. 지난 3년 간 외식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식용유와 간장, 참기름, 고추장, 된장 등 기초 재료의 물가 상승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 상승률은 2.8%로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 평균치(2.7%)보다 0.1%p 높았다. 이런 추세는 2021년 6월부터 3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떡볶이가 5.4%로 가장 높고 도시락(5.3%), 김밥(5.2%), 비빔밥(5.2%), 칼국수(4.3%), 쌀국수(4.2%), 김치찌개백반(4.1%), 구내식당식사비(4.0%) 등 순이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지역 김밥 가격은 평균 3362원으로 3년 전(2692원)보다 24.9% 올랐다. 비빔밥은 같은 기간 8846원에서 1만769원으로 21.7% 상승했다.

칼국수는 7462원에서 9154원으로 22.7%, 김치찌개백반은 6769원에서 8115원으로 19.9% 각각 올랐다.

식용유를 비롯해 참기름,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의 식재료 오름폭은 더 커지는 추세다.

설탕이 20.4%로 가장 높고 소금(16.4%), 식용유(15.2%), 고추장(9.7%), 양주(9.5%), 건강기능식품(8.7%), 맛김(8.1%), 아이스크림(6.1%), 우유(6.0%) 순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달 식용유 상승률은 15.2%로 전달(4.3%)의 3.5배를 넘었다.

◆하반기에는 더 오른다 = 하반기에는 이런 먹거리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올리브유와 간장, 참기름, 조미김 등 가공식품과 김밥, 치킨, 피자, 햄버거 등의 외식 메뉴 가격이 줄줄이 오를 예정인 탓이다. 실제 이미 6월 들어 초콜릿과 콜라·사이다, 김, 간장 등 각종 가공식품과 음료, 프랜차이즈 메뉴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1일부터 가나 초콜릿 등 17종 제품 가격을 평균 12% 인상했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 1일부터 칠성사이다와 펩시콜라 등 6개 음료 품목 출고가를 평균 6.9% 올렸다.

조미김 시장 1위인 동원F&B는 김 가격을 평균 15% 정도 올렸다. 지난달 초 CJ제일제당과 광천김, 대천김, 성경식품이 제품 가격을 올린 데 이어 동원F&B도 인상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국내 간장 시장 1위 업체인 샘표식품은 이달 중순 간장 제품 가격을 평균 7.8% 올렸다. 대표 제품인 ‘샘표 양조간장 501’ 가격은 11.8% 인상했다.

외식기업 중에서는 제너시스BBQ가 지난 4일 치킨 메뉴 23개 가격을 평균 6.3% 올렸다. CJ푸드빌은 뚜레쥬르 여름 메뉴인 ‘국산 팥 듬뿍 인절미 빙수’와 ‘애플망고빙수’를 재출시하면서 가격을 작년보다 각각 6.7%, 3.1% 인상했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외식과 가공식품 부담이 가중되는 서민 물가 안정을 위한다면 가격 인상을 자제해야 하고, 1분기 호실적을 낸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반기 물가 불확실성 커진다 = 공공요금 역시 하반기 물가의 최대 복병이다.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 공공기관들은 그동안 요금 동결로 악화한 재무구조의 개선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서울 지하철 등 수도권 교통요금도 하반기 인상을 앞두고 있다.

변동성이 커진 환율도 주목 대상이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이 아직도 불확실해 원·달러 환율 상승압력이 커지면서 국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환율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유가의 움직임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지난달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4.4달러로 전월(89.2달러)보다 내려갔다. 그러나 지정학적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 국제유가는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류 가격에 반영된다.

한국은행도 올 하반기 물가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3일 금통위 후 기자들과 만나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그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난 4월에 비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물가 상방 압력에 따른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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