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고령화 청년층 진입
청년, 임금에 대한 직업전망 ‘적정임금제’ 도입 절실
불합리한 공사비 삭감 막아 건설현장 정상화 … 22대 국회,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관련 법 재추진 과제
통상 기능인을 고용하는 도급단계 말단에서는 설계금액의 반토막 수준으로 노무비가 삭감되는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고용과 임금 지급은 불가능해진다. 고숙련자를 고용하고 싶어도 지불할 돈이 없다. 오히려 그 돈에 ‘맞춰 먹으려면’ 공기를 단축해야 하고 저임금의 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청년층 진입의 선행조건인 임금에 대한 직업전망 제시가 불가능하다. 공사비(노무비 포함)를 제값에 수주하고 삭감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과 독일은 ‘임금 하한선 규제’를 통해 적정임금의 확보는 물론 건설현장의 정상화까지 도모한다. 기술력 우수업체가 100%에 가까운 제값을 확보하되 모든 참여자가 기여만큼 자기 몫을 가져간다.
#. 2018년 6월 최초의 적정임금제 시범사업 현장에서 골조(형틀·철근) 반장을 만났다. “시중노임단가 이상으로 임금을 책정하고 주휴수당까지 지급하라고 해서 고숙련자들을 모셔왔고 신바람이 나서 일합니다. 품질·안전·생산성이 모두 좋아졌지요. 이런 제도를 10년 전부터 시작했으면 지금처럼 고령화되지 않았을 겁니다. 청년들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작업환경이니까요.”
#. 2011년 출장에서 만난 미국 건설업체인 터너(Turner)사의 노동담당 이사는 ‘프리베일링 웨이지’(Prevailing Wage, PW)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배들도 1931년 도입 이전에는 거세게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임금은 사업주가 알아서 주는 거지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면서. 하지만 9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덕분에 먹고 삽니다. 불합리한 삭감을 막아 전체 파이(공사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2018년 독일 건설업체를 방문한 한국의 출장자들 중 한 사람이 “독일 건설공사에 대한 원도급자의 낙찰률은 얼마나 되나요”라고 물었다. 이 업체 사장은 갸우뚱하면서 “우린 낙찰률을 공개하지 않으나 아마도 100%에 가까울 겁니다. 100원짜리를 100원에 수주하는 게 당연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나요”라고 반문했다.
청년층이 건설현장을 기피하는 이유 중 ‘직업전망 불투명’ 다음으로 꼽히는 것이 ‘낮은 연간 소득’과 ‘위험한 작업환경’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2022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 일당은 18만1166원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연간 소득은 3680만원으로 낮게 집계됐다. 그 이유는 근로일수가 적기 때문인데, 부족해진 공사비에 맞추기 위해 저임금 외국인을 선호하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서울 남구로역 새벽인력시장에서 만난 건설근로자는 “길 건너편의 외국인들이 낮은 임금을 무기로 우리 일자리를 싹쓸이해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위험한 작업환경은 ‘빨리 빨리’에 따라 높아진 노동강도와 관련이 있다. 이것 역시 부족한 공사비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공기단축을 강행한 결과다. 결국 임금 측면의 직업전망을 제시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해 청년층의 진입을 촉진하려면 불합리한 공사비(노무비 포함) 삭감을 막아야 한다.
◆불합리한 공사비 삭감, 다단계로 임금 삭감 = 왜 공사비가 삭감될까? 발주자가 저가낙찰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원·하도급 나아가 다단계 도급과정에서 강자의 ‘단가 후려치기’와 약자의 ‘저가수주 경쟁’이 맞물리면서 공사비 삭감이 증폭된다. 최저가낙찰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과 독일은 최저가낙찰제에도 해법을 찾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고쳐야 한다. 공사비 삭감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예컨대 100원짜리 공사에 대해 원도급자는 하도급자를 믿고 80원에 수주하고, 하도급자는 팀·반장 또는 근로자를 믿고 60원에 수주하며, 불법 재하도급 단계의 팀·반장은 50원에 맡는다.
팀·반장의 비법은 무엇일까? 무리한 공기 단축과 저임금 근로자 투입이다. 이때 외국인의 경우 삭감된 임금도 자기나라와 비교해 높으므로 이를 감내한다. 하지만 내국인은 삭감된 임금을 감내할 수 없다. 낮은 임금을 수용할 수 있는 외국인이 많아질수록 저가입찰 경쟁은 심해지고 공사비 삭감은 커진다. 지금이 그러하다.
요컨대 불합리한 공사비 삭감의 진원지는 도급단계 말단의 ‘임금 삭감’이다. 따라서 공사비 삭감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임금 삭감을 막을 수 있는 하한선을 규제’하는 것이다.
◆임금 하한선 규제로 적정공사비ㆍ임금 확보 = 그것이 바로 미국의 ‘프리베일링 웨이지’(PW) 제도(1931년)와 독일의 건설업 최저임금제도(1997년)다.
미국 연방차원의 PW는 법률이 규정한 주별 직종별 임금의 하한선으로서 연방정부의 재원이 투입된 공공공사에 적용된다. 독일의 경우 단체협약으로 규정한 6단계의 임금 중 하위 2단계의 임금이 저숙련 및 미숙련 근로자 임금의 하한선인데 단체협약 효력의 확장에 의해 공공·민간 모든 공사에 적용된다.
두나라 제도의 공통점은 노동시장의 개방으로 타 지역 또는 외국에서 유입된 근로자가 저임금을 무기로 해당 지역 또는 자국의 근로자를 대체하는 현상이 극심했던 시기에 도입됐다는 점이다. 1931년 미국은 대공황 직전 상황으로 실업이 심각한 시기였다. 중국, 남미, 미국 남부지역의 저임금 근로자가 임금이 높은 동부지역 건설일자리를 과도하게 잠식하는 시기였다. 독일의 경우 1993년에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면서 국경이 사라져 동유럽의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건설일자리를 차지했다. 1996년에 독일 건설노조는 ‘내국인 외국인 동일임금 지급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파업을 감행해 성공했다.
두나라 출장에서의 면담을 종합해보면 두나라 모두 임금 하한선 규제 이후 ‘같은 임금을 줄 바에는 내국인을 우선 고용’하는 관행이 정착되면서 건설현장이 정상화됐다고 평가했다. 근로자들은 일자리와 적정수준의 임금을 되찾고 건설업체 역시 해당 지역에서 수주를 늘리고 적정수준의 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주목할 것은 두 나라에서 임금 하한선 규제를 도입하던 시기의 상황과 한국의 현재 상황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임금 삭감을 막아야 내국인 일자리 확보, 연간 소득 확보, 건설현장 정상화, 청년층 진입 유도 등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임금 하한선 규제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성공 가능성 확인, 청년층 진입 촉진 = 2011년 적정임금제에 대한 최초의 연구 이래 추진이 부진하다가 일자리위원회에서 논의(2017년)와 시범사업 실시, 서울시(2017년 7월)와 경기도(2019년 1월)의 조례 제정과 각 발주공사에 대한 적용, 국회의 관련 법 개정안 발의(2024년 5월 현재 6개) 등의 노력으로 이어졌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 적정임금의 기준을 시중노임단가로 삼고 포괄임금제를 금지했다.
현재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은 서울시가 2017년에 실시한 최초의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의 성과다.
올림픽대로-여의도 간 진입램프 공사현장의 골조(형틀·철근) 반장은 “시중노임단가 이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고숙련 내국인을 우선적으로 투입했는데, 난생 처음 주휴수당을 받으니 모두들 ‘사람대접’ 받는 느낌이라며 신이 나서 일을 더 꼼꼼히 했다. 품질·안전 기준을 엄격하게 요구해 ‘돈내기’(물량단위 성과급)를 안했는데도 속도는 더 빨랐다”며 “돈이 더 들 것 같지만 나중에 유지관리비용이 적게 들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적정임금제의 성공 가능성이 한국에서도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최근 완공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시범사업에 대한 정량적 성과 분석결과가 더욱 자신감을 높여준다. LH가 발주한 적정임금제 공사 2건과 그와 유사한 일반공사 2건을 2023년에 비교 분석했다.
내국인 투입비율이 88.3% 대 68.7%로 적정임금제 공사가 19.6%p나 높았다. 내국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1억원 당 인력 투입량은 3.1명 대 5.1명으로 전자가 2.0명 적었다. 고숙련인력을 위주로 고용하면서 전체 인원은 줄었음을 의미한다. 1인당 노동생산성은 3200만원 대 2000만원으로 적정임금제 공사가 1200만원 더 높았다. 고숙련인력의 투입으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음을 의미한다.
◆지자체 조례제정과 병행 추진해야 = 이제 적정임금제의 도입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부족한 부분은 향후 보완하면 된다. 하나는 국가의 법률을 통해 도입하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적정임금제 관련 개정안의 재추진이 필요하다. 공공·민간 모든 건설공사에 적용할 수 있고 타 업종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으며 엄격한 제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규모의 공사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해 도입하는 것인데, 지자체가 발주하는 모든 규모의 공사를 대상으로 실시할 수 있다. 양자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적정임금제는 청년층의 진입을 촉진하는 임금에 대한 직업전망 제시이자, ‘강자의 단가 후려치기’라는 불합리한 고질적 병폐를 치유하려는 ‘사회적 실험’이기도 하다. 첨병으로서 앞장서고 있는 서울시·경기도·SH 등의 적정임금제 실시 노력에 국민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전 건설근로자공제회 센터장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