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돌풍’ 유럽선거…마크롱 “의회해산”
중도우파 1위 사수 속 강경·극우 약진 … 마크롱·숄츠, 소속당 2·3위로 밀려 ‘굴욕’
이날 유럽의회가 발표한 각국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인구 규모가 큰 주요국에서 극우를 포함한 우파 계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유럽 정치지형의 ‘우향우’ 현상이 한층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요국서 강경우파·극우·민족주의 세력 상승 = 유럽의회가 10일 오전 0시께 발표한 잠정 예측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전체 720석 중 191석(26.53%)을 얻어 유럽의회 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존 의석수(705석 중 176석, 25.0%)보다 비중이 다소 늘었다.
제2, 3당도 자리는 지켰지만, 영향력은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제2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은 135석(18.75%)을 차지, 의석 비중이 현 의회(19.7%)보다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제3당인 중도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은 현재 102석(14.5%)에서 크게 줄어든 83석(11.53%)에 그칠 것으로 점쳐졌다. 친환경 기후정책 추진에 앞장섰던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도 현재 71석(10.1%)에서 크게 줄어든 53석(7.3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강경우파와 극우 성향 정치세력은 선거 전 여론조사 수준에는 못 미쳤지만 당초 예고된 대로 약진했다. 이들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압승하거나 확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강경우파 성향 정치그룹인 유럽보수와개혁(ECR)은 현재 69석(9.8%)에서 71석(9.86%)으로,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는 49석(7.0%)에서 57석(7.92%)으로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현 의회와 비교하면 ECR과 ID 의석 총합은 10석이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 정치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무소속’ 극우·민족주의 성향 정당의 약진도 눈에 띈다. 독일대안당(AfD)은 독일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 2위를 차지, 유럽의회에서 적어도 16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유럽의회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올해 선거 투표율이 다수 회원국에서 증가함에 따라 51%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직전 2019년 투표율(50.66%)를 상회하는 것으로, 1994년(56.67%) 이후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프랑스·독일 등서 집권당 참패…유럽 ‘우향후’ 가속 = 이번 선거는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각국 기성 정치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고 있어 정치적 파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굴욕’을 안기고 있다.
프랑스 출구조사에 따르면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약 32%의 득표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RN은 유럽의회 내 극우 정치그룹(교섭단체)인 정체성과 민주주의(ID) 일원이다. 마크롱이 소속된 중도성향의 르네상스당은 예상 득표율 15.2%로 RN의 절반에 그치며 2위로 예측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예측 결과 발표 약 한 시간만에 패배를 인정하면서 의회를 해산하고 이달 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독일도 상황은 비슷하다.
독일 출구조사에서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29.5%의 득표율로 1위, 극우 독일대안당(AfD)도 16.5%의 득표율을 확보할 전망이다. 2019년 선거에서 11.0%를 얻었던 AfD는 이번 선거에서 뇌물 스캔들과 나치 옹호 발언 등 논란에도 약진했다.
숄츠 총리의 친정인 사회민주당(SPD)은 AfD에 밀려 3위를 기록하는 등 ‘신호등’ 연립정부에 속한 정당 3곳 모두 2019년 대비 득표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기민·기사당 연합은 이같은 선거 결과에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조기 총선 실시를 연정에 촉구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고물가·이민문제·안보불안이 극우돌풍 배경 = 이번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스트·민족주의 성향 정당이 이처럼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은 고물가, 이민자 급증과 우크라이나 전쟁·중동분쟁으로 고조된 안보 불안감 등으로 유럽 각국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극우 정당의 약진으로 유럽의회 정치지형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유럽의회에서 교섭단체 역할을 하는 정치그룹은 국적이 아닌 정치 성향이 비슷한 정당 간에 결성하게 된다. 정치그룹을 형성하기 위해선 최소 7개 회원국에서 23명의 의원이 모여야 한다.
현재 의회에는 제1당 격인 유럽국민당(EPP)을 포함해 총 7개 정치그룹이 있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기존 정치그룹 구성이 변동되거나 새 정치그룹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각 정치그룹은 내달 중순 첫 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참여 정당 및 의원 명단을 확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약 한 달간 정치그룹 재편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