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가 불러온 '갈등의 도돌이표'
전단→풍선→확성기→풍선
남북 모두 책임은 상대방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일명 삐라)이 북한의 오물풍선으로 돌아오고,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를 재가동하자 북한은 다시 오물풍선을 대량 살포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대응을 경고했다. 최근 남북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도돌이표다. 양측 모두 책임은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9일밤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문자메시지를 통해 “북한이 대남 오물풍선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또다시 부양하고 있다”며 “현재 풍향이 남서풍 및 서풍으로 경기 북부 지역에서 동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합참은 “국민들께서는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시고, 떨어진 풍선을 발견하시면 접촉하지 마시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우리 군은 이날 오후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다. 그러면서 추가 방송여부는 북한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물 풍선을 추가로 날렸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대북단체의 전단 살포와 확성기 가동이 계속되면 새로운 방식의 대응을 할 것이라 위협해 당분간 남북 간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국내 민간 단체들이 지난 6~7일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자,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330여개의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9일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대북 심리전 수단인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고, 이날 오후 5시부터 최전방 지역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가동했다. 이날 군은 약 2시간 동안 고정식 확성기 여러 대를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체결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및 이동식 확성기를 철거하고 철수한 이후 약 6년 만이다. 그전까지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지역 24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16대가 있었다.
이날은 우리 군이 보유한 고정식 확성기 중 일부를 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대북 확성기 방송은 우리 군이 제작하는 대북 심리전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확성기로 재송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고출력 스피커를 이용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장비와 시간대에 따라 청취 거리가 1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이날 대북 확성기 가동 사실을 공개하면서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추가로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함에 따라 우리 군도 11일 확성기를 재가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참은 “이런 사태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오물 풍선 살포 등 비열한 방식의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9일 밤 늦게 담화를 내고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특히 김 부부장은 이번 오물풍선 살포에 대해 “정당하고도 매우 낮은 단계의 반사적인 반응”이었다며 위기 고조의 책임은 대북 확성기를 튼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이 더 이상의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하고 자숙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앞서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도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오물 풍선을 날렸고 약 1천개가 남측에서 식별됐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