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물리학이 일으킨 의학혁명 - 레이저

2024-06-11 13:00:00 게재

누구든 한살이라도 더 젊게 보이길 원한다. 사실 동안인지 노안인지를 결정짓는 건 간단한 차이에서 나온다. 바로 피부다. 청년들의 희고 젊은 피부는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물론 화장으로 주름을 감추거나, 엄청나게 비싼 영양크림으로 피부노화를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사실 그 어떤 화장품보다 더 뛰어난 방법이 있다. 바로 레이저를 사용하는 것이다. 레이저를 써서 점이나 기미를 제거하는 것은 기본이다. 피부를 깎아내거나 색소를 파괴해 피부를 더 희게 만들고 피부의 탄력을 재생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비싼 가격에도 피부과에는 수요가 몰려드니 가히 레이저 전성시대라 할 수 있겠다.

레이저는 특정한 파장의 빛을 증폭해 매우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레이저라는 말은 일상에서 고유명사처럼 쓰이지만 사실 영문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앞 글자를 딴 두문자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유도방출복사에 의한 빛의 증폭’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어떤 발명가가 한순간에 ‘짜잔’하고 만들어 낸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레이저의 가능성은 아인슈타인이 처음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네온사인이 형형색색의 여러가지 색깔로 빛나는 것은 알고 보면 서로 다른 여러 원소를 사용해서 전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자는 저마다 독특한 색깔의 빛을 낸다. 엄밀히 말하면 같은 원자라도 한가지 색의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색깔의 빛을 내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는 20세기 초까지 미스터리였다.

이를 밝혀낸 사람은 닐스 보어로 그는 원자 속에 띄엄띄엄 서로 다른 높이를 갖는 에너지층이 존재하고, 전자가 이 에너지 층을 오가면서 빛을 내기 때문에 빛의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나온다는 설명을 했다.

레이저의 가능성을 연 아인슈타인

1917년 아인슈타인은 원자모형에 근거해 빛을 내는 새로운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예측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도방출’이었다. 이는 높은 에너지 준위에 놓여 있는 전자가 외부에서 들어온 빛에 의해 자극을 받아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떠밀려 내려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굳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도미노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도미노는 누워 있을 때보다 서 있을 때 위치에너지가 더 높은데, 불안정하지만 여러 도미노가 일제히 서 있을 수는 있다. 이때 외부에서 작은 충격이 전해져 하나의 도미노가 쓰러지면 전체 도미노가 무너져 큰 에너지를 쏟아 내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론적 예측을 넘어 실제 유도방출을 이용해 전자기파를 처음으로 증폭하는 기술은 1950년대에 나왔다. 찰스 타운스(Charles Townes)와 그의 동료들이 암모니아 분자를 이용해 마이크로파를 증폭하는 매이저(MASER, Microwave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기술을 선보였던 것이다. 매이저와 레이저는 딱 한글자 차이로 빛 대신 전파를 증폭한 것이었다.

매이저가 나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을 증폭하려는 시도들이 잇달았다. 가장 먼저 빛의 증폭에 성공한 것은 레이저의 발명자로 알려진 시어도어 메이먼이다. 1960년 그는 루비 결정을 사용해 최초의 레이저를 만들었다. 메이먼의 성공 이후 여러가지 유형의 레이저가 빠르게 개발되었다. 알렉산더 미첼과 제임스 레이틀은 네오디뮴 레이저(Nd:YAG)를 개발했고, 곧이어 로버트 홀이 반도체 레이저를 만들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저기술은 연구실을 떠나 산업현장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레이저는 이제 일상 속의 조명이나 콤팩트디스크를 넘어, 반도체 제조 공장에서부터 군사무기에 이르기까지 현대문명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빛이 되었다.

고출력 레이저가 여는 의학혁명

앞서 피부과를 예를 들어 레이저의 유용성을 얘기했지만 레이저가 피부과의 전유물은 물론 아니다. 사실 의료에 있어 레이저가 가져온 첫번째 혁신은 안과에서 나왔다. 소위 라식(LASIK)이라 불리는 시력교정 수술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어떠한 의료용 칼로도 해낼 수 없는 정밀한 각막 절삭이 고출력 레이저로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레이저를 이용한 충치 치료나 종양을 정밀하게 제거해 내는 기술 또한 모두 고출력 레이저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니 레이저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의료혁명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출력 레이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펄스 증폭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이 증폭기술을 개발한 제라르 무루와 도나 스트릭랜드가 늦게나마 2018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다행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