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 살포 ‘무방비’… 국회, 헌법재판소 입법보완 ‘무시’

2024-06-11 13:00:38 게재

헌재 위헌 판결 내리면서 “전단 살포전 신고·제지 입법” 제시

국민의힘 “현행법으로 통제 가능” 경찰청장 “법적 근거 없다”

“접경지역 안전 위해 전단 통제 안 된 이유 찾아 보완해야”

북한의 오물풍선에 따른 우리나라의 확성기 재개 대응 등으로 남북관계가 극단적 경색국면으로 전환된 시작점엔 시민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가 있었다. 대북 전단 살포는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제한돼 있었으나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에서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위헌판결을 내리면서 사실상 전단 살포를 제재할 방법이 없는 무방비 상태에 노출됐다. 당시 헌재는 ‘접경지역 국민들의 안전’이라는 전단 살포를 금지한 입법취지를 인정했고 이에 따라 전단살포의 사전 신고와 경찰의 직접 제지 등을 담은 입법 보완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는 위헌이라는 이유로 ‘전단 살포 금지’ 조항을 없애기 위한 법안 발의와 심사에만 주력했을 뿐 보완 입법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헌재가 전단 살포 위헌과 관련해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 제한’과 ‘처벌조항의 형평성’을 문제 삼았을 뿐 ‘무방비한 전단 살포’를 허용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장막 설치된 접경지 군이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가운데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이동형 확성기로 추정되는 차량이 위장막 아래 대기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소위에서는 위헌판결을 받은 ‘전단 살포 금지’조항 삭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이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경협 의원은 “전단 살포를 무작정 다 허용하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며 “헌재 판결의 취지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안을 새로 준비해야 될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 판결의 요지에 대해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 위헌”이라며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면서도 미수범도 처벌하고 징역형까지 두고 있는데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또 “‘접경지역은 군, 경찰 등 이상시 정찰을 하고 있어서 전단 살포 징후가 포착되면 경찰이 출동해서 통제가 가능하므로 덜 침익적인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는 것”이라며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이 확보되고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될 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반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이 취지를 정확히 살리자면 미수범 처벌에 대한 문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해서 통제가 가능하다는 부분을 토대로 법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접경지역 안전 우려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 = 이날엔 국민의힘 지성호 윤상현 권영세 의원이 각각 발의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상정됐고 모두 ‘전단 살포 금지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소속 소위원장대리 태영호 의원은 “전단 금지 조항만 삭제하면 헌재 판결 요지를 반영한 것으로 된다”고 했고 같은당 하태경 의원은 “(헌재 위헌판결로) 누가 전단을 뿌린다고 해서 이 법으로 처벌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며 “무력화된 것”이라고 했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전단 등 살포 금지 조항 관련해서는 헌재의 위헌 결정이 있어서 효력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조항 정리 차원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이 “전단을 살포했을 경우에 통제하는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거냐”고 묻자 태 소위원장대리는 “경찰관직무집행법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며 “경찰이 사전에 (전단 살포) 그 징후를 포착하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경찰의 직무유기, 직무태만”이라고 했다. 하 의원은 “정부가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성실히 집행할 수 있도록 여당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며 “접경지역 안전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전날 윤희근 경찰청장은 북한이 대남 오물풍선을 띄운 배경으로 지목되는 국내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경찰이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는 경찰관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 사변, 인공구조물의 파손이나 붕괴, 교통사고, 위험물의 폭발, 위험한 동물 등의 출현,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이런 사태가 막기 위해 경고·억류·제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 “경찰, 전단 살포 직접 제지토록 해야” = 헌법재판소는 전단 살포 금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경찰들의 적극적인 임무에 대해 입법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법제실에 따르면 헌재는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이어서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과잉금지원칙 위반에 관한 대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입법자는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경찰 등의 대응 조치가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단 등 살포 전에 사전에 관계기관에 신고하도록 하고, 관할 경찰서장은 관련 법률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경우 살포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기하여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살포를 직접 제지하는 등 입법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어 민주당 소속 김용선 의원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의 실효성 문제를 들어 “접경지역의 위해 요인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법률적인 수단으로서는 취약하다”고 했다.

김경협 의원은 “경찰관직무집행법도 보완해야 될 사항이 있으면 보완을 해서 같이 처리를 하자”며 “왜 제대로 (전단 살포가) 통제가 잘 안 됐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한 것이고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전단 살포 금지조항 삭제와) 같이 검토를 해야 될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엔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올라오지 않았고 전단 살포는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게 됐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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